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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처와 회복

7월 2일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나이 들어갈수록 시가 점점 좋아집니다. 언제나 상처와 상처의 극복, 그리고 희망을 노래하시는 박두순 시인의 ‘상처’라는 시가 오늘따라 마음에 와닿습니다.

나무줄기를 따라가 보면
상처 없는 나무가 없다.

그렇지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눈보라에 시달리지 않는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흔들린 만큼 시달린 만큼
높이와 깊이를 가지는 상처


상처를 믿고 맘 놓고 새들이 집을 짓는다.
상처를 믿고 꽃들이 밝게 마을을 이룬다.


큰 상처일수록
큰 안식처가 된다.

‘꽃을 보려면’이라는 시는 또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모릅니다.

채송화 그 낮은 꽃을 보려면
그 앞에서 고개 숙여야 한다
그 앞에서 무릎도 꿇어야 한다
삶의 꽃도 무릎을 꿇어야 보인다.

‘burnout’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거듭되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심신의 탈진상태를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이 burnout 증후군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신체적, 정서적극도의 피로감은 무기력증이나 자기혐오, 직무 거부로 연결됩니다. 마치 연료가 다 타버린 것처럼 갑자기 일할 의욕을 잃고 업무에 적응할 수 없게 되는 현상입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이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기’입니다. 때로 죽도록 집착하고 갖은 애를 쓰며 견뎌내는 대신 그냥 한 걸음 ‘쓱’ 옆으로 비켜서는 것이 의외의 좋은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때로 옆으로 비켜선다는 것, 놓아버린다는 것, 참으로 자존심상하는 일이며, 어려운 일이지만 어차피 우리네 삶이란 것은 ‘놓아버리기’의 연속입니다. 일, 명예, 돈, 사람, 관계, 욕심, 자리…

사실 우리가 그토록 목숨을 걸고, 또 절대적인 것이라고 여기던 것들도 사실 그리 오랜 세월 지나지 않아 상대적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새로움을 발견하고 싶다면,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를 원한다면 잔뜩 움켜쥐고 있는 것을 놓아버려야만 합니다.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섬을 통해 우리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움 중의 새로움이신 예수님, 너무나 ‘특별하신’ 예수님이시기에 그분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한다면 가급적 많이 비워내야만 합니다.

기존의 인생관, 과거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들, 절대적이라고 여겼던 인간적 가치들, 변화무쌍한, 그래서 세월의 흐름 앞에 어쩔 수 없이 빛을 바래가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나를 이탈시키면 시킬수록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께서 더 많이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결국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을 더 크게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지금보다 자세를 훨씬 더 많이 낮춰야만 합니다. 겸손의 덕으로 우리의 온 몸과 마음을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