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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애야, 고생 많았다. 그 모진 세월 견디고 기다리느라 애썼다!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평상에 뉘어’라는 표현을 통해 중풍 병자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잘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웬만한 중풍 병자들은 힘겹지만, 안간힘을 다해 홀로 걷고자 애를 씁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병자는 병세가 깊을 데로 깊어진 말기 중풍 환자였음이 확실합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고장 나고 AS를 받으러 부지런히 병원을 다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초기 증세라든지 상황이 그리 심각하지 않으면 대체로 스스로의 힘으로, 아니면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을 가는데, 평상에 뉘어 예수님께 데려온 병자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워 보입니다.

중증 중풍 병자의 하루는 어떠했을까요? 보통의 사람들은 기상 알람이 울리면 힘겹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는 기상 알람이 울려도 스스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워서 떡 먹기인 화장실 한번 가는 것이 세상 어렵습니다.

세수를 할 수 있나, 샤워를 할 수 있나? 매사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도움받는 것도 한두 번이지 도우미의 짜증이 하늘을 찌릅니다. 누군가가 밥 한 숟갈이라도 떠먹여 주면 감지덕지한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저 쫄쫄 굶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어 백방으로 노력해 보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이런 중풍 병자가 기적적으로 예수님과의 만남을 갖습니다. 측은지심의 주님께서 세상 가련한 그를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그를 눈여겨보시며 격려하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애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오 복음 9장 2절)

이어서 놀라운 치유의 은총을 선물로 주십니다.

“일어나 내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마태오 복음 9장 6절)

우리도 이 한 세상 살아가다 보면 중증 중풍병자 못지않은 심각한 고통 앞에 직면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는 비참한 현실 앞에 서게 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 봐도 그물에 걸린 가련한 한 마리 물고기처럼 참혹한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벽 앞에 서게 됩니다. 다 때려치고 싶은 순간, 모두 포기하고 싶은 순간…

그러나 결코 때려치거나 포기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하느님의 시계는 우리 인간의 시계보다 훨씬 더디게 때문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충분히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조금 더 기다려봐야겠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느 날 기적처럼 따스한 예수님의 손길이 내 혹독했던 삶을 어루만져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상 따뜻한 음성이 들려올 것입니다.

“애야, 고생 많았다. 그 모진 세월 견디고 기다리느라 애썼다. 이제 고생 끝이니 안심하거라. 이제 나와 함께 새 삶을 한번 멋지게 살아보자꾸나.”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