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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님께서는 때로 새롭게 시작하도록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부르십니다!

6월 13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요즘 들어 깜박깜박하는 일이 무척 잦아졌습니다. 더불어 이것저것 잃어버리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나름 귀중한 자료들이 담긴 유에스비도 어디 뒀는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자동차 열쇠며 체크카드도 분명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데, 행방이 묘연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성인이 한 분 계시니,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이십니다.

잃어버린 물건이 생겼을 때, 안토니오 성인에게 전구를 청하는 습관의 유래는 볼로냐에서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안토니오가 젊은 수도자들의 선생 역할을 하던 때였습니다. 그가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던 시편집이 한 권 있었는데, 그 책 안에는 나름 소중히 여기던 원고들과 메모들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안토니오는 성당의 자기 자기에 항상 놓여있던 시편집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심이 컸던 그는 빨리 그 책을 찾게 해달라는 지향을 두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범인은 수련자였습니다. 그 시편집이 너무 탐이 났던 그는 그 책을 챙겨서 수도회 밖으로 도망을 갔던 것입니다. 안토니오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던지, 그 수련자는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수도원으로 돌아와 그 시편집을 안토니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시편집은 오늘날 볼로냐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답니다.

1195년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태어난 안토니오는 원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입회해서 대성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성에 따라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24세 되던 1219년에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수도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그런데 서품된 지 1년이 지난 1220년 안토니오 생애를 크게 뒤흔드는 대사건이 일어납니다. 포르투갈 왕은 모로코에서 선교활동 중에 순교한 다섯 명의 프란치스코회 수사 유해를 포르투갈로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하필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토니오가 생활하고 있던 수도원 성당에 안치된 것입니다.

안토니오는 틈만 나면 순교자들의 유해 앞으로 다가가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안토니오는 깊은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안토니오야! 지금 잘 갖춰진 수도원에서 기도에 전념하며 지내는 것도 좋지만 아프리카에서 순교한 수사들처럼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가난한 이웃들을 향한 사랑의 실천도 중요하단다.”

안토니오는 용기 있게 수도원 원장에게 자신의 뜻을 알렸습니다. 그를 보물처럼 아끼던 원장과 다른 형제들은 가슴 아팠지만 그를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를 놓아줍니다. 정들었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수사들과 작별 인사를 할 때 한 연로한 수사가 이렇게 외쳤습니다.

“페르디난도! 그럼 부디 성인이 되십시오!”

주체할 수 없는 안토니오의 순교 열정은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졌습니다. 자신의 영성의 고향인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는 송구스런 일이었지만 프란치스코회로 적을 옮기게 되지요. 그리고 안토니오라는 수도명을 받고 곧바로 북아프리카 선교사로 파견됩니다. 원래 그의 이름은 페르디난도였습니다.

때로 하느님께서는 누군가를 더 크게 쓰시기 위해, 더 충만하게 살도록, 더 큰 물로, 더 위험한 곳, 더 필요한 곳으로 초대하십니다. 안토니오 역시 순교자들의 불같은 신앙과 당대 큰 영성의 흐름이었던 프란치스코 영성에 깊이 매료되어 말을 갈아타게 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회원으로서 은둔과 기도 속에 살던 안토니오가 어느 날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기 위해 포를리로 갔는데, 우연찮게 서품식 미사 강론을 안토니오가 맡게 되었습니다. 강론을 시작하자 청중들은 갑자기 귀가 솔깃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안토니오가 누군지도 잘 몰랐기에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강론은 깊이가 있을뿐더러 열정과 논리를 겸비했었습니다. 호소력까지 대단해서 그의 강론은 사람들을 완전히 매료시켰습니다.

그의 탁월한 능력을 파악한 장상들은 안토니오를 이태리 북쪽 지방과 프랑스 전역의 순회 설교가로 파견합니다. 특별히 안토니오는 당시 신자들을 현혹시키던 카타리 이단에 맞서 교권을 수호하는데 전력을 기울입니다.

그의 명성은 자자해져서 가는 곳 마다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의 설교로 이단과 오류에 빠진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교회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지닌 영성의 깊이를 전해들은 사람들이 안토니오 사제의 고해소 앞으로 길게 줄을 섰습니다.

안토니오의 신앙과 교회관이 얼마나 확고했으면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이단자들을 부수는 쇠망치’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강론대에서 선포하는 말씀이 얼마나 힘이 있고 아름다웠으면 사람들은 ‘전무후무한 설교가’라고 칭했습니다.

안토니오가 파도바에 가서 자리 잡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이 도시는 안토니오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특히 안토니오의 1231년 사순절 강론은 사람들을 크게 매료시킵니다. 때로 한없이 감미로웠지만 때로 쌍날칼처럼 날카로웠던 그의 강론은 고리대금업자들을 강하게 공격했고 가난한 백성들을 따뜻이 감싸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인생 안에서도 당신의 특별한 계획을 지니고 계십니다. 때로 우리가 새롭게 시작하도록 새로운 세상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때로 하느님께서는 안토니오에게 하신 것처럼 더욱 완전히 당신을 따르도록 새로운 가치와 인생관을 선물로 주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