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성령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과연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6월 5일 [성령 강림 대축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당신의 협조자이자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거듭 약속하시는데, 그 이유는 명료합니다. 자녀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요? 아직도 어리고 연약한 자녀들에 대한 근심 걱정, 노심초사의 결과, 자신을 대신할 성령을 우리의 보호자로 지명하고 파견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시기까지 몇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① 폭풍 속에서도 평화로이 살아가도록: 예수님께서는 산더미처럼 높은 파도와 폭풍우가 몰아치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겁에 질린 제자들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그 한 가운데에서도, 뱃고물을 배게 삼아 태평스럽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당신 내면 깊숙이 성령께서 자리잡고 계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우리 역시 성령과 함께라면 높은 시련의 파도와 고통의 풍랑 그 한가운데서도 잔잔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②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공동체를 위한 공동선을 실천하도록: 주님의 성령께서는 우리 인간 각자에게 다양한 은사를 선물로 주십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1코린토 12장 8~10절)

성령의 은사는 그뿐이 아닙니다. 어떤 이에게는 고통을 잘 이겨내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따뜻이 위로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실패 속에서도 희망할 수 있는 은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렇듯이 성령을 통하여 다양한 은총의 선물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유는 다른 무엇에 앞서 공동선을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아무리 특별하고 대단한 은사가 주어졌다 할지라도 결코 우쭐거려서는 안되겠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신 선물에 깊이 감사드리며, 그 성령의 선물을 이웃과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 내어놓아야 하겠습니다.

③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식별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도록: 때로 우리 인간 공동체는 연구대상입니다. 나치즘처럼 집단 전체가 함께 광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름 배웠다는 집단들 역시 그릇된 판단으로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지혜로움이요 식별력입니다. 무엇이 더 본질적인 것인지,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무엇이 진정 인간다운 것인지? 항상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결정할 수 있는 식별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식별력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 성령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또다시 맞이한 성령강림대축일, 성령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과연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 은사가 아직 제대로 발굴되지 않고 발휘되지 않았다면, 늦게라도 그 작업을 시작해보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성령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마음의 평화와 천상 지혜와 식별력으로 무장하여 힘들어하는 이웃들에게 우리 존재 자체로 선물이요 은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