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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요한에게는 요한의 길이 있고, 베드로에게는 베드로의 길이 있습니다!

6월 4일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자신의 미래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 사도의 심정은 꽤나 착찹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을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은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요한복음 21장 17~18절)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와서 철부지 어린 시절, 파릇파릇한 청소년기, 혈기왕성한 청년 시절, 완숙한 장년기를 거쳐, 마침내 노년기에 도달하면, 기쁨보다는 슬픔이, 희망보다는 우울감이 커져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끝난 이후부터 베드로 사도의 행적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전해 주지 않습니다. 나머지 행적을 밝혀 줄 수 있는 정확한 자료가 없기에, 전승이 전하는 이야기들을 토대로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추정컨데 베드로 사도는 안티오키아, 코린토 등 여러 지역으로 선교 여행을 다녔을 것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생애 마지막 시기를 로마에서 보내셨습니다. 네로 황제에 의해 자행된 대박해 때 체포되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셨다고 전해집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자신의 미래가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고통투성이뿐인 혹독한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스승님께서 콕 짚어주시니,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서운한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그런 연유였던지 베드로 사도는 사도단 안에서 언제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던 경쟁자이자 절친이었던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다시 말해서 요한 복음사가의 운명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게 몹시 궁금했던가 봅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요한복음 21장 21절)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의 미래에 대해서 알쏭달쏭 수수께끼 같은 대답을 하셨던 것처럼, 요한 사도의 미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애매모호한 대답을 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요한 복음 21장 22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호기심을 반기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종착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그 사람 운명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고 ‘너나 잘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우리 인간 각자는 저마다 지닌 역량이 다르고, 부여받은 사명이 다릅니다. 궁극적인 도착점은 동일하지만 목적지로 나아가는 길은 조금씩 다릅니다. 요한에게는 요한의 길이 있고, 베드로에게는 베드로의 길이 있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다른 사람들 눈을 의식하거나 눈치보지 말고 당당히 우리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돌아보니 주변 사람들 의식하느라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피곤하게 살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치 보고, 다른 사람들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며 살다 보니, 내 삶에 나도 사라지고, 주님도 사라져버린 어색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왔습니다.

다른 사람 인생은 그 사람에게 맡겨야겠습니다. 주님께서 그 사람 인생도 주관하시고 안배하시니 대폭 신경을 꺼야겠습니다. 엉뚱한 곳으로 분산되는 에너지들을 대폭 줄여야겠습니다. 대신 내 삶을 좀 더 주도적으로, 좀 더 충만히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