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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체되어 있지 않고 성장하는 사랑이야말로 참된 사랑입니다!

6월 2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만나셨을 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똑같은 질문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시는 장면 역시 그분의 고품격 유머감각, 그리고 예리한 심리요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안 그래도 부활하신 그분 앞에 좌불안석이었던 베드로였습니다. 수난 직전 베드로는 얼마나 자주 공개적으로 다짐했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떠나간다 할지라도 저만은 결코 스승님을 떠나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세 번씩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외쳤습니다. 사실 수제자의 ‘세 번 배반 사건’은 충격적인 사건이기도 하지만, 저를 포함한 우리 인간 각자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우리 인간 군상(群像)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우리 각자 안에도 베드로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참담하고 수치스러워 깊이 고개를 떨어트리고 있던 베드로 사도에게 이윽고 예수님께서 말문을 여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그 말씀에 베드로는‘이제야 용서를 받는구나, 이제야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구나.’ 하는 마음에 큰 목소리로 외칩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러나 웬걸,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분께서는 또 한 번, 또 다시 한 번, 거듭 세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스승님께서 누굴 놀리시나? 아직도 분이 안 풀리셨나?’ 하는 마음과 함께 베드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슬픈 감정이 솟아올랐습니다.

고단수셨던 예수님의 특별 제자 교육방식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수제자 직분을 수여했지만 베드로가 못내 못미더웠던 그분이셨습니다. 럭비공 같아서 언제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베드로였습니다. 뜨겁게 타올랐다가도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다혈질 베드로를 잘 파악하고 있었던 그분이셨습니다.

그래서 한번 두 번이 아니라 세 번씩이나 질문을 거듭하신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그분의 진의를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지만 마음속으로 굳은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스승님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수제자 배반 사건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수치스런 대사건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과 수제자 사이에서 꼭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그분이었다면, 부활하자 마자 제일 먼저, 베드로를 비롯해 초스피드로 출행랑을 친 제자들을 집합시켰을 것입니다. 일렬로 쭉 세워놓고 한 시간에 걸친 정신교육을 실시했을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오랜 세월 교육을 시켰건만, 너희들이 나를 배신해?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특히 너 수제자 베드로! 한 두번도 아니고 세번씩이나 나를 배신해? 정말 실망이다!”

그러나 정작 부활하신 그분께서는 수제자 배반 사건에 대해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으십니다. 예전처럼 똑같은 사랑으로 제자들을 대하셨습니다. 손과 발의 못자국을 보여주시며 당신의 부활이 참되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 당신 부활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의 교육 방법이 참으로 고단수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라 참으로 지혜로운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 앞에서 수제자의 위신을 깎아내리지 않으셨습니다. 호통을 친다거나 분위기 어색하게 연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효과 만점의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세번 배신한 베드로 사도에게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세번에 걸쳐 질문을 던지신 것입니다. 그 어떤 방식보다 훨씬 강도 높은 교육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야단 한번 안치시고, 언성 한번 높이지 않으시고, 아주 효과적으로 제자단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참교육을 실시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둘 사이에 오고갔던 불같던 사랑은 배신, 낙담, 후회, 눈물을 거쳐 다시금 깨달음, 용기, 희망, 진정한 사랑의 단계를 밟으며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이렇게 진정한 사랑은 멈춰있지 않습니다. 참된 사랑은 역동적입니다. 정지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는 사랑, 정체되어 있지 않고 성장하는 사랑이야말로 참된 사랑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