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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원의 성채인 가톨릭교회 안으로 들어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5월 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피정 센터에 와서 낯선 사람들에 대한 환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온몸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족처럼, 절친처럼 여기며, 기쁘게 환대하다보니, 참으로 은혜로운 체험을 많이 하고 삽니다.

첫 만남 때 인사부터 잘해야겠지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누추하고 불편하시더라도 머무시는 동안 주님 은총 안에 편안한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필요한 것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빈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 만남, 첫인사가 잘 되면 그 뒤로는 매사가 술술 일사천리입니다.

그 간단한 환영의 인사에 세파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이 순식간에 눈녹듯이 녹아내린다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아름다운 환대의 영성을 좀 더 생활화한다면, 이 심각한 위기 상황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사람들이 우리 가톨릭교회를 찾아올 때, 기존의 구성원들은 어떤 자세를 보이는지요? 진심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환영하고 환대하고 있는지요? 그들이 우리 성전 마당으로 들어서면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가요?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신 마리아의 마음속은 그야말로 복잡하고 심란했을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미래에 대한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도 컸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큰 그림을 그려주셨지만, 마리아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는 순간 즉시 다가오는 도전들과 근심 걱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서른 마흔도 아니고 10대 초반의 소녀 나자렛의 마리아는 마치 안갯속 길을 걷는 듯한 막막함으로 인해 힘겨웠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을 한 아름 안고 마리아는 사촌 엘리사벳이 살고 있는 아인카림을 찾아갑니다. 마리아의 머릿속은 정말이지 복잡했을 것입니다.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혼전 잉태 사건을 엘리사벳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마음에 걱정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 마당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모든 걱정은 한낱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버선발로 튀어나온 엘리사벳을 그야말로 온몸과 마음으로 마리아를 환대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복음 1장 42~45절)

사촌 언니 엘리사벳의 극진한 환대에 불안·초조했던 마리아의 마음은 태평양 바다보다 더 편안해졌습니다. 이 엄청난 하느님의 초대 앞에서 대체 누구한테 가서 자문과 조언을 구해야 하나 전전긍긍하고 있던 마리아였는데, 엘리사벳은 그 초대가 진정으로 참되다는 것을 진정성 있는 환대로 확증해준 것입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 삶의 다양한 순간 우리를 극진히 환대해주십니다. 내 품 안으로 잘 들어왔다고. 내 성찬의 전례 안으로 잘 들어왔다고. 영원한 안식처요 구원의 성채인 가톨릭교회 안으로 잘 들어왔다고.

오늘 하루 우리 역시 주변 동료 인간들을 진심으로, 그리고 극진히 환영하는 환대의 영성을 생활화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환대란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작은 친절, 작은 서비스, 작은 환영과 격려의 말이 환대의 영성의 핵심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