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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청해야 할까요?

5월 28일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오래전 연로하신 한 자매님께서 제게 기도를 부탁하셨는데, 기도 지향을 두고 기도 바치면서 너무나 웃겼습니다.

시장통에 작은 점포를 가지고 있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장사하기가 힘들어서 내놓았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났는데도 매수자가 없어 답답해 죽겠다. 신부님 기도빨 세다니, 부탁드린다. 팔리기만 하면 섭섭지 않게 후사하겠다고 하십니다.

다행인지, 제 기도빨이 셌던 탓인지, 일주일 뒤에 자매님께서 환한 얼굴로 미사에 오셔서 아이들한테 아이스크림 한 턱 제대로 쏘셨습니다.

때로 우리가 지향을 두고 바치는 기도, 하느님께서 보시고 깔깔 웃으시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역세권 아파트 분양에 참여했는데, 꼭 당첨되기는 바라는 청원기도, 내가 좋아하는 축구팀의 승리를 위한 기도, 사실 이런 기도는 정확한 의미로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도라기보다는 강요요 억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청해야 할까요? 하느님께서 어김없이 들어주실 바람직한 청원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다른 무엇에 앞서 하느님의 성령을 청해야 합니다. 우리 삶 가운데 성령께서 항상 현존하시고 활동하시기를 청해야 합니다. 한없이 나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대신해서 성령께서 함께 기도해주시길 청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시련과 도전 속에서도 더 꿋꿋이 더 당당히 사아갈 힘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좀 더 영적으로 변화되기를, 우리가 고통과 시련을 기쁘게 견뎌낼 용기를 주시기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때로 불의하고 부당한 현실,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과 기꺼이 맞설 의로움과 의연함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의 선익을 위한 지향도 필요하지만 공동선을 위해 더 많이 기도 바쳐야겠습니다. 더 이상 전쟁과 폭력이 없는 세상, 더 이상 무자비한 폭력과 살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청해야겠습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굶주리지 않는, 더 이상 그 누구도 피눈물 흘리지 않는 정의롭고 공평한 세상의 도래를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이런 기도야말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참된 청원기도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바치는 청원 기도의 지향이 좀더 폭넓어질 때, 생기는 신기한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큰 기도를 바칠 때, 우리의 사소한 청들은 덤으로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치는 매일의 기도 지향을 진지하게 점검하고 성찰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기도의 폭과 지평을 좀 더 확장시켜나가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