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세상 사람들은 나란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5월 26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년 전, 엄숙하고 경건하기 이를 데 없는 교회와 사회 분위기 속에 참으로 유쾌하고 매력적인 사제가 활동했으니, 그 이름은 로마의 성자요 젊은이들의 친구 필립보 네리 신부님(1515~1595)이었습니다.

음악과 시와 예술의 도시 피렌체에서 태어난 그는 로마로 순례를 오게 됩니다. 순례 효과는 200퍼센트였습니다. 그는 로마의 성지들을 순례하면서 받은 큰 은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열망으로 불타올랐습니다.

필립보 네리는 병원을 찾아가 병자들을 방문했습니다. 직장에서 높은 근무 강도에 시달리는 근로자들에게 다가섰습니다. 도시 광장이나 술집에서 빈둥거리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다정한 말과 친절하고 소탈한 태도로 많은 사람들을 신앙의 길로 돌아서게 만들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강력한 권고로 필립보 네리는 1551년 36세의 나이에 사제가 되었습니다. 사제가 된 후에는 하루 15시간까지 고해를 듣곤 했습니다. 고해를 본 사람들 가운데 몇몇 신자들을 뽑아 따로 영적 지도를 했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단체를 결성했습니다.

다들 내가 신부인데, 에헴, 하고 한걸음 크게 뒤로 물러나 있던 시절, 필립보 네리 신부님께서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개구쟁이 아이들과 한바탕 신나게 놀고 계셨습니다. 마음 둘 곳 없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셨습니다. 이러한 신부님의 영성과 활동을 300년 세월이 흐른 뒤 돈보스코가 이어받게 됩니다.

필립보 네리 신부님은 울적한 얼굴의 청소년들, 힘겹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를 되찾아주기 위해 성당에만 앉아 있지 않고 길거리로 나섰습니다. 기쁨 속에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한 다양한 단체들을 설립했으며, 수많은 이벤트들을 마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필립보 네리 신부님은 당신 자신 존재 그 자체를 기쁨의 원천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루는 신부님께서 길거리를 걸어가시는데 사람들이 다들 포복절도를 했습니다. 이유는? 신부님께서 아침에 면도를 하시면서, 아마도 의도적으로 그러셨겠지요. 콧수염 한쪽은 그냥 더부룩하게 두고, 다른 쪽은 싹 밀어버렸습니다.

이토록 인간미 넘치고 유머 감각이 탁월했던 필립보 네리 신부님이었기에, 그의 주변에는 언제사 수많은 어린이들, 노약자들, 여인들, 정치인들, 교회 지도자들이 들끓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옆에 앉아 있는 그 자체가 휴식이요, 기쁨이요 행복이라고 당당히 증언했습니다.

필립보 네리 신부님을 찾아와 영적 지도를 청하곤 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들어보면 두 다리가 후덜덜 떨릴 지경입니다. 로욜로의 성 이냐시오 신부,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이쯤 해서 무척이나 부끄러워지는군요. 세상 사람들은 나란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와 함께 있는 것이 기쁜지? 행복한지? 나와 함께 있는 그 자체가 천국 체험인지? 나와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는지? 나와 함께 있는 그 시간이 주님을 만나는 시간인지?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