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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네 인생사 그 한 가운데 살아 숨 쉬고 계시는 성령

5월 22일 [부활 제6주일]

예수님의 유언(遺言)에 따르면, 지금 우리 시대는 ‘성령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떠나가신 예수님께서는 근심에 가득 찬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협력자이자 우리들의 보호자, 당신과 일심동체이자 분신(分身), 당신의 대체자이자 우리들의 동반자이신 성령을 선물로 남겨주셨습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성령께서는 우리들의 삶 구석구석을 파고드십니다. 때로 구차스럽고, 때로 옹색한 우리네 인생사, 그 한 가운데 살아 숨 쉬고 계십니다. 때로 자연 안에, 때로 한 인간 존재 안에, 때로 매일 발생하는 사건 안에도 굳건히 현존하고 계십니다.

고맙게도 너무도 오랜만에 단비가 내렸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마음껏 수분을 섭취한 초목들의 얼굴이 어제와는 달리 무척이나 행복해 보입니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만난 꽃과 나무들이 활기찬 목소리로 제게 인사를 건넵니다.

천천히 바라보니 성령께서는 자연 안에 살아 숨 쉬고 계셨습니다. 성령의 흔적과 그분의 손길, 성령의 움직임과 역사하심을 조금이라도 감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 측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좀 더 눈을 크게 떠야겠습니다. 좀 더 마음을 활짝 열어야겠습니다. 육으로만, 세상으로만 향하는 우리의 시선을 영으로, 불변의 진리로 되돌려야겠습니다.

 

우리가 자주 체험하는 바처럼, 성령은 조금은 알쏭달쏭한 분이십니다. 알 것 같다가도 모를 분, 아니 계시는 듯, 그러나 분명코 계시는 분, 안개 속에 계시는 분, 마치도 구름 같고 바람 같으신 분입니다.

많은 경우 성령께서는 바람처럼 ‘쌩’, ‘쓱’ 하고 신속히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가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감지하고, 그분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그분을 발견하고, 그분을 온몸으로 느끼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실 성령께서는 지천으로 피어오르는 작은 들꽃 한 송이 한 송이 속에 머물러 계십니다. 한 송이 한 송이 안에 하느님 아버지 사랑의 손길이 담겨있으니, 성령께서 그 안에 현존하고 계신 것이 분명합니다.

많은 경우 성령께서는 이웃들의 작은 음성이나 작은 몸짓 그 안에 살아 숨 쉬고 계십니다. 이웃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 속에, 이웃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자극과 예언자적 목소리 속에 성령께서 분명히 현존하고 계십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계십니다. 우리 내면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향해 측은지심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성령의 움직임입니다. 우리 안에서 기도하고픈 마음, 다시 주님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고픈 마음, 이웃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마음, 불의 앞에 정의로움이 용솟음친다면,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언젠가 형제들과 함께 큰 축제를 성공리에 마치고 회식을 할 때였습니다. 삼겹살을 원 없이 구워 먹었습니다. 어디 삼겹살만 먹었겠습니까? 기분도 좋겠다, 소맥을 제조해서 셀 수도 없는 잔을 비웠습니다.

거기다 철판 비빔밥까지 비벼서, 몇 공기나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습니다. 우선 배가 너무 불러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술기운에 정신도 몽롱하고, 그저 드러누울 생각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그 상태에서는 기도할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움직임도 뒷전이었습니다. 영적인 생각들도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매일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역동적인 성령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그분의 인도 아래 살고 싶다면 어느 정도의 결핍이 필요합니다. 춥고 배고픔, 긴장과 자극이 필요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