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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환영과 호의가 아니라 피와 고통 속에서 성장해온 우리 교회

5월 21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올해 다시 한번 영광스런 순교자들의 숨결이 진하게 느껴지는 배론 성지에 와있습니다.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누스의 주교요지도 읽고 묵상하며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우리 가톨릭교회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박수갈채와 환호가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세상의 박해와 순교, 배척과 미움 속에서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왔습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초대 한국 교회 공동체 역시 순교자들의 피를 자양분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환영과 호의가 아니라 피와 고통 속에서 우리 교회가 성장해온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아무래도 교회의 창립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물든 세상과는 태생적으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신 분입니다.

세속의 권력자들이 언제나 취했던 노선은 한결같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의 번영, 현세적 안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노선은 방향이 정 반대였습니다. 불완전한 이 세상의 몰락이었습니다. 그 대신 외치신 것이 천상에서의 완벽한 복락이었습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세상 권력자들의 비리와 악행을 만천하에 고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한결같이 취하신 노선이 이러했으므로 세상으로부터의 미움과 박해는 불을 보듯이 명백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자기 한목숨 부지하기 위해 갖은 권모술수와 음해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유한함을 일깨우시며 하느님 나라의 영원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때로 결코 만만치 않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처신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다 보면 자주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래전 이러한 현상을 미리 예견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요한복음 15장 18~20절)

예수님을 스승이요 친구, 아버지로 모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살아가는 한 어쩔 수 없이 또 한 명의 순교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잘살기 위해서는 순교 영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모두 순교자들의 후예들입니다. 우리들의 피 속에는 순교자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토록 큰 은총을 입은 우리 순교자들의 후예에게 주어지는 한 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더이상 신유박해나 기해박해가 없는 오늘날의 이 시대, 우리 선조들이 지니셨던 그 놀라운 순교 정신, 순교 영성을 어떻게 우리 삶 가운데서 실천할까 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너무나 간단하더라구요. 죽을 각오로 현실의 고통에 직면하는 일입니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기도하는 일입니다. 순교자의 마음으로 정말 용서하기 힘든 그 인간, 정말 꼴 보기 싫은 그 사람을 다시 한번 용서하고 포용하는 일입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이다.’ 라고 외치며 최선을 다해서 사는 일입니다. 앞으로의 1년을 내 생애 가장 멋진 1년으로 장식하겠다고 다짐하며 불꽃처럼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바로 순교영성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의 삶이란 것, 멋진 티브이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호화찬란하다거나 특별하지가 않습니다. 때로 지루하고 때로 따분하고 때로 구질구질하고, 때로 엄청나게 구립니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많은 우리들의 삶입니다.

순교 영성을 산다는 것은 이렇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매일의 삶 가운데서도 활짝 웃으면서, 기쁜 얼굴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인내가 신앙 활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로마서 8장 18절에서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매일의 고통을 기쁘게 견뎌내는 것 그 자체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참여하는 길이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환난에서 모자라는 부분”(콜로 1장 24절)을 채우는 일이며 순교 영성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