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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수님의 세족례는 당신의 진심, 본심을 말해주는 행동이었습니다!

5월 12일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복음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주 높은 벽 앞에 서시곤 했습니다. 아무리 쉽고 명쾌하게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귀를 닫고 마음을 닫아버렸기에, 목청껏 외쳐도 그 말씀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오곤 했습니다.

특히 적대자들은 예수님을 향한 노골적인 적개심으로 똘똘 뭉쳐있었기에, 그저 고발 건수를 찾기에만 혈안이 되어있었지, 말씀을 듣고자 하는 의도는 아예 없었습니다.

때로 제자들마저도 말씀의 진의를 알아듣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였습니다. 한번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점심때 먹을 빵을 챙겨오지 않았다고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오늘 복음만 해도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자주 아래로 내려가라, 군림하지 말고 섬겨라,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라고 강조했지만, 전혀 알아듣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는 제자들의 모습에 얼마나 안타까우셨던지,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가르침을 주셨는데, 세족례였습니다.

제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허리를 깊이 숙인 후 그들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일일이 씻겨주신 스승님께서 일어나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복음 13장 16~17절)

과거 유다 문화 안에서 세족(洗足)은 노예 가운데서도 몸종들이 주로 하던 일이었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의 기후는 건기의 여름과 우기의 겨울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덥고 건조한 여름의 경우 바깥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먼지와 땀으로 발이 더러워지기 마련이었습니다.

따라서 주인의 귀가 시간에 맞춰 몸종은 주인의 말을 씻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몸종은 주인의 발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허리를 굽혀 먼지투성이의 발에 물을 붓고 뽀득뽀득 씻습니다. 그리고 깨끗한 수건으로 정성껏 발의 물기를 닦곤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시대 세족은 철저하게도 노예에게 주어진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그저 보여주기 위한 일회성 행사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메스컴을 의식해서 적당히 포즈만 취하고 마는 그런 행동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먼 길 떠나기에 앞서 당신께서 극진히 사랑했던 제자들 한명 한명을 위해 기도하며 정성껏 행하신 세족례였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행동, 당신의 본심을 말해주는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노예의 일이었던 세족을 하느님의 일인 세족례로 승격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족례를 통해서 이제 세족은 노예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 되었습니다. 몸종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 되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