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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빈 무덤은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음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강력한 표지입니다!

4월 16일 [성토요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잠들어있는 무덤에 대한 예우는 각별합니다. 한식이나 추석 때면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무덤으로 향합니다. 혹시라도 훼손되지 않았을까? 잡목이나 잡초가 무성한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합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선친의 무덤에 오랜만에 성묘를 갔는데, 묘소가 파헤쳐지고, 관뚜껑이 열려있고, 시신이 사라졌다면, 얼마나 놀라고 당혹스러워하겠습니까? 자녀된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하고 슬픈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간 여제자들에게 그런 기상천외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참혹하게 운명하시고 난 후, 이제 그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생각 한 가지는 오로지 예수님의 시신이었습니다.

서둘러 치른 매장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자신들에게 참사랑을 일깨워주신 분, 새 삶을 선물로 주신 예수님을 위해 남아있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골몰했습니다.

여인들은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해 서둘러 최고급 수의와 향유를 을 것입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경황없었던 어제였기에 다시금 차분하고 꼼꼼하게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신새벽에 무덤을 향해 달려갔던 것입니다.

무덤에 다다르기 전 세 여인에게는 고민거리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통상적인 유다인들의 무덤은 동굴 형에다가 개폐형이었습니다. 우리처럼 흙을 파서 관을 묻고 다시 흙을 덮는 봉분형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자신을 위해 미리 준비해둔 무덤이었는데, 이 무덤은 한 마디로 동굴 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동굴 방 안쪽 바닥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덤 입구는 큰 돌을 굴려 막았습니다. 입구를 막은 돌을 옆으로 굴려야만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여인들로서는 힘에 벅찬 일이었기에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에 도착했을 때 그 걱정거리는 덜었습니다. 이미 무덤 문이 열려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즉시 다른 걱정이 엄습해왔습니다.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가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여인들이 서둘러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혼비백산했습니다.

갑자기 눈부시게 차려입은 남자 둘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었겠지요. 그들은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루카 복음 24장 5~7절)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과 정성이 극진하면 그 마음이 하늘에 닿아 하늘을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여인들의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 주님을 향한 극진한 사랑은 머지않아 주님 부활 체험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예수님 빈 무덤 사건,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교 역사와 신앙 안에서 큰 획은 긋는 중요한 대사건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그냥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의 시신으로 그냥 무덤 안에 남아계셨더라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은 무의미합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창시자의 무덤에 대한 의미 부여가 대단합니다. 작은 조각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회당이나 법당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교는 창시자 예수님의 무덤이 이제 더이상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빌리셨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 소유의 무덤은 더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빈 무덤입니다. 빈 무덤은 바로 예수님의 진정한 부활을 의미합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만왕의 왕임을 드러내는 확증입니다. 빈 무덤은 참으로 그분께서 부활하셨음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표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서 슬퍼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빈 무덤을 통해 드러난 예수님의 부활을 만천하에 알리는 부활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죽음을 이겨냈음을, 예수님의 겸손과 순명이 죽음의 세력조차 물리쳤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일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