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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리스도 안에 죽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4월 15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구십 평생을 한결같이 수많은 청소년들과 교우들 사이에서, 존재 자체로 기쁨의 원천, 기쁨의 샘물, 기쁨의 사도로 살아가셨던 저희 수도회 노숭피 로베르토(1932~2022) 신부님께서 거룩한 성주간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노숭피 신부님께서는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가 지구상 가장 가난했던 시절, 당시 가장 잘나가던 나라, 미국을 떠나 우리 땅으로 건너오셨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서 겪었던 고초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만,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그렇게 사랑하며, 평생을 살아오셨습니다.

살아생전 “왜 이름이 노숭피냐?”는 질문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한국의 숭늉과 미국의 커피가 합해진 것이라며, 유머 넘치게 설명해주곤 하셨습니다. 이름부터 시작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40여년전 노숭피 신부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광주에서 수련을 받던 시절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신부님께서는 참으로 청빈하셨습니다. 웬만하면 걸어 다니시던지, 버스를 타고 다니셨습니다.

교우들이 좋은 옷을 사주면, 잘 챙겨놓았다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셨습니다. 당신은 늘 공동체 옷방에 널려있는 허름한 옷을 즐겨 입으셨습니다. 송광사로 소풍을 가면, 문화재 관람료 천원 아깝다며, 당신만 알고 계시는 개구멍으로 저희를 안내하곤 하셨습니다.

같이 살아보니 친화력이 정말 탁월하셨습니다. 그 누구라도 단 한 번만 만나면 십년지기 절친처럼 만들어버리셨습니다.

더 이상 찬란할 수 없는 눈부시게 환한 미소와 함께,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시고, 근황을 물어봐 주시고, 이것저것 신경 써주시니, 남녀노소 그 누구든 홀딱 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힘겹게 살아가던 수많은 사람이 신부님의 위로와 격려에 힘입어 힘겨운 세상을 기꺼이 견뎌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신부님을 영적 스승으로 모신 것은 너무나도 큰 영광이요 기쁨이었습니다. 철없던 젊은 수도자 시절,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겨워 다 때려치우고 싶었던 순간, 별것 아니라며, 다 지나간다며, 힘내라며 등 두드려 주시던 그 모습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그렇게 탁월한 기쁨 전도사였던 신부님께도 고통은 어김없이 찾아오더군요. 만년에 이르러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 유쾌하고 친절한 모습, 기쁨으로 충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당신께 다가온 고통을 견뎌내고 이겨내느라 소진되고 쇠락한 신부님의 모습을 뵙기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 한 가지! 신부님께서는 극심한 고통 한가운데서도 당신 특유의 환한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께서 기쁨의 사도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맞이할 죽음도, 예수님의 죽음처럼, 노숭피 신부님의 죽음처럼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죽음이면 좋겠습니다.

우리 각자의 죽음이 주님의 확고한 현존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죽음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가 반드시 있음을 확증하는 아름다운 사건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죽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 죽음을 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가장 큰 증거요 사랑의 행위가 될 것입니다.”(헨리 나웬 신부)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