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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괜찮다, 다 괜찮다!

4월 3일 [사순 제5주일]

참으로 은혜롭고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요한 복음에 등장합니다. 이른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예수님 앞으로 끌려온 여인의 스토리’(요한 복음 8장 1~11절)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절체절명의 순간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반응은 참으로 특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요한 복음 8장 1절)

이 부분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대체 예수님께서 그 절박한 순간에 땅에 무엇을 쓰셨을까요? 수많은 성경학자들과 교부들이 여기에 대해서 연구하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셨습니다. 둘러서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쓰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적대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성경 구절을 쓰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께서는 ‘악한 고발자들의 죄목’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바닥에 쓰신 내용에 대해서는 귀신도 모른다는 것, 하느님 아버지도 모르신다는 것, 오직 예수님 자신만 아신다는 것입니다.

당시 율법 학자들 사이에서도 어렵고 곤란한 질문을 받을 경우, 즉답을 피하고 싶을 때, 말없이 땅에 무엇인가 쓰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과열된 분위기를 진정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런 행동을 취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촌각의 순간, 하느님 아버지께 지혜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적대자들을 향해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셨습니다. 단단한 방어막도 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침묵 속에 가만히 계셨습니다. 이어서 손가락으로 바닥에 뭔가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작전명은 ‘김빼기 작전’이었습니다.

적대자들 입장에서 이번 먹잇감을 가운데 두고 예수님과 언성 높여 대판 한번 싸워야 했습니다. 그래야 자신들이 짠 ‘예수 고발과 체포’작전이 팍팍 진척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시며 깡그리 그들을 무시해버리셨습니다.

갑자기 김이 빠질 데로 다 빠져버린 적대자들은 엄청난 공허함을 느끼게 되었고, 동시에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위기관리능력이 참으로 뛰어난 예수님이셨습니다.

 

이어서 맥 빠지고 허탈해진 적대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결정타 한방을 더 날리십니다.짧은 한 마디 말씀은 이 세상 그 어떤 현자, 솔로몬 할아버지도 내놓을 수 없는 불멸의 명언이었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복음 8장 7절)

그 말씀 끝에 사람들은 하나하나 떠나가고, 결국 텅 빈 성전 마당에는 예수님과 그 여자 단 둘만 남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그 순간에 대해서 아주 아름다운 주석 하나를 남기셨습니다.

“모두가 다 빠져나가고 오직 둘만 남았습니다. 우리 인간을 대표하는‘비참한 여인’과 ‘하느님의 자비’ 둘만 남았습니다.”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이 어처구니없는 사랑, 상상을 초월하는 사랑, 기막힌 사랑으로 인해 여인은 눈보다 더 깨끗하게 변화되었습니다. 이런 여자의 상태를 가리켜 교회 전승은 ‘순결한 창녀’라고 했습니다. 순결한 창녀, 이것은 바로 오늘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무언인가 쓰셨다고 복음사가는 전하고 있는데 사실 땅바닥은 여인의 가슴이었습니다. 그 땅바닥은 죄와 타락과 방황으로 얼룩진 여인의 마음이자 우리 각자의 마음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땅바닥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 마음 하나하나에 당신 손가락이 아프도록 꾹꾹 눌러 또 다른 한 말씀을 새겨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들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딸들아, 너희들이 아무리 죄가 많다할지라도, 너희들이 아무리 몹쓸 짓을 했다 할지라도, 괜찮다, 다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