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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님 참기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3월 31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탈출기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 보면, 모세의 처지가 무척이나 안스러워 보입니다. 많은 경우 그의 처지는 주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서 있는 샌드백이나 동네북 같은 존재였습니다.

주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 모세 사이의 대화가 참으로 흥미진진합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을 보신 주님께서는 백성의 대표 격인 모세를 불러 호통을 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트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탈출기 32장 9~10절)

주님만 모세에게 진노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틈만 나면 모세에게 화를 내고, 그를 괴롭혔습니다. 출애굽 이후 40년간의 광야 생활 내내, 여차하면 자신들의 리더인 모세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따졌습니다.

“대체 우리를 왜 그 좋은 땅 이집트에서 끌어낸 것이요? 그 잘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대체 언제 구경하게 되는 것이오? 대체 언제까지 이 밋밋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식으로 먹어야 하는거요? 당신이 섬기고 받드는 주님이라는 자가 과연 있기는 한거요?”

이렇듯 모세는 주님과 백성 사이에 끼어 평생토록 마음고생, 몸고생 많이 한사람입니다.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차라리 차고 있던 완장 벗어 던지고 멀리 도망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무던한 사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늘 한결같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끝도 없는 불평불만을 잘 인내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약속의 땅까지 그들을 잘 인도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그들을 잘 다독였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신과 우상숭배, 타락과 방황 앞에 주님께서도 가끔씩 인내심의 한계를 보이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인간을 닮으신 분이시니, 우리와 똑같은 인격체로서의 감정을 지니셨고, 그런 배경과 함께 당신 백성과 소통하셨습니다.

폭발 직전까지 가신 주님 앞에 모세가 취한 태도는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눈물로 애걸복걸합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자비를 청합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의 대표 격인 모세와 주님 사이에는 끝도 없는 밀당이 계속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돌아보니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주님께 간절히 청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나의 이 머리칼보다 많은 죄, 부족함, 미성숙을 고스란히 보고서도 호통치지 않고, 나를 대신해서 주님께 참아달라고,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라고 청했을 것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웃들의 부족함,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인간들의 악행이나 타락을 목격할 때, 우리 역시 모세처럼 주님 앞에서 간절히, 목숨 바친 눈물의 기도를 올려드려야겠습니다.

“주님 참기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주님 저들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조차 모릅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십시오. 주님 이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