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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 어떤 환난과 고통이 다가오더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시리라 희망합니다!

3월 30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예언서 중의 예언서라고 할 수 있는 이사야서는 꽤나 흥미롭고 특별한 예언서입니다. 작품의 역사적 상황, 사용되는 언어와 문체, 주요 신학 사상 등을 고려할 때 이사야서는 통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다시 말해서 저자가 세 명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1~39장을 제1이사야서, 40~55장을 제2이사야서, 56~66장을 제3이사야서라고 요즘 칭하기도 합니다.

특히 제2이사야 예언자의 말씀 선포 대상자들은 더 이상 유다나 이스라엘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은 이미 처절하게 파괴되었으며, 백성들은 유배를 당했습니다. 바빌론으로 끌려온 백성들은 비참하고도 굴욕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1이사야 예언자와 제2이사야 예언자의 활동 시기는 적어도 150년 정도의 차이가 나고 있는 것입니다.

제2이사야 예언서의 골자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이며 창조주이신 주님께서는 가련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남의 나라 땅에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바빌론 제국이 난다 긴다 하지만 인간 존재의 힘이나 위대함은 풀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 주님께서는 이방인 임금 키루스를 이스라엘의 해방과 재건을 위한 도구로 뽑으셨다. 그를 통해 주님께서는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당신 백성을 유배에서 해방시켜 위로해주실 것이다. 제2의 출애굽, 새출애굽이 도래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시온의 재건이 이루어질 것인데,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결정적인 구원에 도달할 것이다.

유다왕국이 멸망한 후에 바빌론으로 끌려와 살아가고 있던 유다인들의 하루하루는 참담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머릿속은 참으로 복잡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계시다면 어찌 이리도 참혹한 현실을 허락하시는지? 과연 주님께서 계시기나 한건지? 그분께서 계시다면 어찌 이리 오래도록 남의 나라 땅에서 수모를 당하게 하시는지? 혹시라도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완전히 저버리신 것은 아닌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난 한 예언자가 있었으니, 이사야의 사상을 이어받은 제2이사야 예언자였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그는 절망에 빠져있던 백성들을 따뜻이 위로합니다. 첫 선포 말씀부터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이사야서 40장 1~2절)

특히 오늘 첫 번째 독서로 선포되는 말씀의 말미 부분은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고통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위로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야서 49장 14~15절)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위한 당신의 도구로 키루스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는 페르시아 대제국을 건설한 왕으로서 당대 ‘핵인싸’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벌이는 전투마다 승승장구했습니다. 페르시아 백성들은 크게 환호하고 지지를 보냈습니다. 정복한 나라 백성들에게는 유화 정책을 써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는 여세를 몰아서 당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강대국 바빌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설명에 따르면 바빌론은 천 개의 성문으로 둘러쌓여 있었으며, 수많은 보화와 보물로 가득 찬 황금의 도시였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성문과 성벽을 새로 세우고 튼튼하게 보수하고 증축했습니다. 성벽은 2층에다 높이는 6.5미터였습니다. 성벽은 일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두열로 되어 있었는데, 두 성벽 사이의 폭은 3.72미터였습니다.

키루스는 이토록 강력한 바빌론을 함락하고 멸망시킵니다. 엉겁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 유배로부터 해방을 맞이합니다. 이를 통해 키루스는 주님 구원의 도구로 선포됩니다. 그는 주님의 구원 행위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키루스를 인도하시어 그로 하여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결국 키루스가 하는 모든 일들은 주님의 일이었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묘하신 분이십니다. 많은 경우 그분이 계획하시는 일을 우리의 좁은 안목과 머리로 알아차리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필요한 노력이 그저 그분 손길에 모든 것을 맡기고 기다리는 일입니다. 그분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해주시리라 낙관하는 일입니다. 그 어떤 환난과 고통이 다가오더라도 그분께서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시리라고 희망하는 일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