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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비하신 주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언젠가 반드시 내 인생에 봄날이 찾아오리라!

3월 29일[사순 제4주간 화요일]

한해 두해도 아니고 서른여덟 해 동안이나 꼼짝못한 채 앓아누워있던 병자의 외침이 남의 말 같지 않습니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요한복음 5장 7절)

저도 돌아보니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끝도 없이 길고 어둔 터널을 빨리 빠져나가 버려고, 그렇게 발버둥쳐도 스스로의 힘으로 안 되더군요. 깊고 축축한 수렁에서 벗어나보려고 기를 써봐도, 그럴수록 더 깊이 빠져들더군요. 빨리 나아보려고, 그래서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해도 허사였습니다.

아무리 기를 써도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더군요. 결국 두손 두발 다 들고, 당신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며 모든 것 다 포기하고 내려놓는 순간, 위로부터 가느다란 희망의 빛이 내려왔습니다.

오늘 은혜롭게도 벳자타 못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38년 차 환자 역시 그랬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10년, 20년도 아니고 38년입니다. 당시 유다 사회 평균 수명입니다. 그는 거의 한평생을 병으로 고생했습니다. 그냥 병도 아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꼼짝달싹 못하는 중증의 병이었습니다.

그의 엄청난 인내심이 놀랍니다. 기대할 것이라고는 단1도 없는 상황에서도 끝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도 기회가 오겠지, 하는 간절한 기대를 안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 무한한 인내의 결실이 오늘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유심히 주변을 살펴볼 일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그래서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인 우리들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봐야겠습니다.

오늘 은혜롭게도 예수님을 만나 치유의 은총을 입은 환자가 평생에 걸쳐 바친 기도는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자비하신 주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언젠가 반드시 때가 오리라. 그때 나는 힘차게 일어서리라. 단 한 순간이라도 사람답게 살다가 죽으리라. 언젠가 반드시 내 인생에 봄날이 오리라!”

환자가 견뎌온 그 오랜 인고의 세월이 결국 오늘 결실을 맺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자비가 환우의 비참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질병이든 영혼의 질병이든, 우리 인간의 병은 여간해서 잘 낫지 않습니다. 천천히 주님께서 개입하실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들과 더불어 주고받은 상처, 우리가 부모로부터 겪은 애정결핍,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끼고 사는 극도의 미성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음먹는다고 순식간에 치유되지 않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면, 주님의 자비에 힘입어 아주 천천히 은총의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