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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님께서 어찌 지극정성의 기도, 목숨 바쳐 올리는 기도를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3월 10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바빌론 유배 때 인질로 끌려간 유다인들이 머나먼 타국땅에서 겪었던 고초는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깊은 신앙심과 타고난 총명함으로, 혹독한 유배지에서도 자신의 삶을 활짝 꽃피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벤야민 지파 출신 모르도카이, 그리고 그의 조카 에스테르였습니다.

에스테르의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삼촌 모르도카이의 손에 양육되었는데, 어려서부터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습니다. 처세술이 남달랐던 모르도카이는 크세르크세스 임금 시절 왕국 안에서 봉직하고 있었습니다.

와스티 왕비가 폐위되자 모르도카이는 즉시 조카 에스테르를 후궁으로 들어가게 힘을 썼고, 오래가지 않아 아름답고 붙임성 있는 그녀는 왕의 눈에 띄게 되었으며, 총 애를 한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왕은 즉시 그녀를 왕비로 임명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초고속 신분의 상승이었습니다. 유배를 끌려온 것만 해도 가련한데, 부모마저 여읜 한 소녀가 순식간에 대제국의 왕비가 된 것입니다. 당시 크세르크세스 왕이 통치하던 지역은 어마무시했습니다.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127개 주의 제후들과 지방관들이 그의 휘하에 있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모르도카이와 에스테르는 어느 날 엄청난 큰 위기 앞에 봉착합니다. 꽤나 까칠했던 모르도카이가 왕국의 제2인자 하만에게 허리를 숙이지 않자 미운털이 박힙니다. 하만의 계략으로 대제국 전 지역에 임금의 인장이 찍힌 칙령을 보내게 되는데…그 내용이 ㅎㄷㄷ입니다.

“아이와 여자 할 것 없이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다인들을 열두째 달인 아다르 달 열사흗날 한날에 파멸시키고 죽여서 절멸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라.”

동족들이 몰살될 것이라는 정보를 미리 파악한 모르도카이와 에스테르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건 마지막 카드를 사용하게 되지요. 2인자 하만을 제거하기 위해서 왕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2인자 자리에 앉은 하만은 보통내기가 아니었습니다. 자칫 말 한마디 잘못하면 왕과 하만 둘 사이를 이간질하는 수작으로 몰려 역공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에스테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가는데, 결코 그냥 나아가지 않습니다. 사흘간에 걸친 간절한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화려한 의복을 벗고 고뇌와 슬픔의 의복을 입었습니다. 값진 향료 대신 재와 오물을 머리에 뒤집어 썼습니다. 즐겨 치장하던 온몸을 헝클어진 머리칼로 덮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의 주님께 외쳤습니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이 몸은 위험에 닥쳐 있습니다…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신들의 임금님, 모든 권세의 지배자시여! 사자 앞에 나설 때, 잘 조화된 말을 제 입에 담아 주시고, 그의 마음을 저희에게 대적하는 자에 대한 미움으로 바꾸시어, 그 적대자와 동조자들이 끝장나게 하소서.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에스테르기 4장 17절)

에스테르 역시 어쩔 수 없이 나약한 한 인간 존재였기에 동족 전체의 목숨이 걸린 사명을 안고 임금 앞으로 나아갈 때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사색이 되어 우왕좌왕한다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평생토록 그녀가 믿어왔고 의지해왔던 주님의 이름을 목청껏 부릅니다. 그분께 목숨바쳐 간절히 청합니다. 영혼과 육신, 마음과 정신 모든 것을 다 바쳐, 자신의 존재 전체를 다 바쳐 간절히 기도를 바칩니다.

주님께서 어찌 이런 지극정성의 기도를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