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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랑이란 결국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버리는 일입니다!

2월 25일[연중 제7주간 금요일]

혼배성사 강론 때마다 단골로 써먹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제 주례사 내용을 바꿔봐야지 하면서도 대상이 다르다 보니 늘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사랑이란 보다 단순한 것입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과의 작은 약속을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사랑이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원치 않는 행동을 자제하는 일입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 안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통해서 상대방의 이름으로 행하여 주는 일입니다. 사랑이란 결국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버리는 일입니다.”(최인호, 사랑의 기쁨)

혼인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총체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한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장점이나 긍정적인 면, 그 사람의 성공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한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지닌 약점과 상처 모두를 함께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가 걸어온 삶 전체와 또 앞으로 지고 갈 십자가까지 함께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혼인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사막을 함께 걸어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여행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긴 여행길입니다. 때로 걷다 보면 투명한 아침햇살이나 넉넉한 저녁 무렵의 아름다운 황혼도 바라볼 것입니다. 가끔 시원한 오아시스도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도 걸어야 하고 강한 모래바람과도 맞서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오늘 잡은 두 손, 끝까지 놓지 않고, 항상 서로 의지하고 서로 참아주고 서로 배려하면서 긴 여행길 끝까지 잘 걸어가기 바랍니다. 오늘 이 첫 마음만 잘 간직한다면 분명히 하느님께서 늘 동행해주시고 행복한 여행길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또다시 접할 때 마다 부담스러운 혼인의 불가해소성에 대해서 소개하십니다. 한번 혼인했으면 갈라서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만큼 혼인이 소중한 것인 동시에 신성한 것임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혼인 성사는 수도 성소나 사제 성소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성사입니다. 만일 청춘남녀들이 혼인해서 출산을 이어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사회가 유지되며, 어떻게 봉헌 성소가 생겨나겠습니까?

테르툴리아누스 교부의 ‘그리스도인의 혼인’에 대한 가르침이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교회가 묶고, 봉헌으로 굳건히 하고, 축복으로 봉인하고, 천사들이 선포하고, 아버지께서 확증하시는 혼인의 행복을 어떤 말로 적절히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의 희망, 하나의 열망, 하나의 규율, 하나의 섬김으로 일치된 두 그리스도인과 같은 짝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 둘은 형제이며, 각자의 소임에서 동등합니다. 그들 사이에는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갈라짐이 없고, 참으로 둘이 한 몸입니다. 몸이 하나이면 마음도 하나입니다.”

“그들은 함께 기도하고, 하느님 앞에 함께 엎드리고, 함께 단식하고, 서로 가르치고, 서로 권고하고, 서로 위로합니다. 둘 다 교회 안에서 완전히 동등하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합니다. 하느님의 잔치에서 완전히 동등하고,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완전히 동등하며, 위로를 받을 때도 그러합니다. 서로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상대방에게 소홀하지 않으며,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습니다.”

둘은 부부인 동시에 서로 형제라는 말씀이 눈길을 끕니다. 서로 숨기지 말고, 서로 짐이 되지 말라는 말씀 또한, 오늘 이 세상 모든 부부에게 꼭 필요한 권고 말씀 같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