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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 특기는 상처받는 것입니다. 제 취미는 그 상처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2월 19일 [연중 제6주간 토요일]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마르코 복음 9장 2~3절)

타볼 산 위에서 제자들이 목격한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묵상하며, 오늘 우리에게도 그러한 변모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그냥 변모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거룩한 변모’입니다.

변모, 변화, 성장과도 같은 부담스런 개념 앞에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리고 빨리 포기합니다. 뿐만아니라 지극히 회의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원판불변의 법칙’을 굳게 믿으며,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지 않는 이상 안 바뀐다고 부르짖으며, 자신은 물론 이웃들의 변화, 교회와 세상의 변혁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합니다.

이런 우리 앞에 예수님의 생애는 참으로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생토록 변모, 변화, 성장, 이동을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공생활 기간 내내 절대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으시고, 떠나고 또 떠나셨습니다.

권능에서 무능으로. 강함에서 약함으로, 창조주에서 피조물로, 위대함에서 작음으로, 자립에서 종속으로, 이러한 하느님의 이동은 아들 예수님의 이 세상 육화강생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한계와 제약을 지닌 나약한 인간인지라, 쉽게 우리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를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열심히 움직이지만, 늘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상처와 고통을 온몸에 지고 말입니다.

어느 영화 명대사가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제 특기는 상처받는 것입니다. 제 취미는 그 상처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이상 어쩔 수 없이 안고 가는 갖은 상처와 고통, 좌절과 실망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변화와 성장, 또 다른 한 걸음 내딛기를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거룩한 변모는 그 사건 자체를 뛰어넘어 마지막 부활을 향하여 나아감을 상징적으로 가리킵니다. 그때에는 하늘나라에서 정화된 신자들이 눈처럼 하얗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옷인 교회를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해주시고 더 나아가 영원한 축복과 육과 영의 빛으로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존자 베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