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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십자가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좀 더 호의적으로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를 꼭 끌어안으십시오!

2월 18일[연중 제6주간 금요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르코 복음 8장 34절)는 예수님의 강력한 권고 말씀이 오늘따라 유난히 제 가슴을 칩니다. 예수님께서는 ‘뒤를 따르는 사람’ 즉 당신의 제자(弟子)가 되기 위한다면, 세 가지 구체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십니다.

①자신을 버리고. 40년 가까이 버리고 또 버린다고 발버둥 쳐왔지만,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이 산더미 같습니다. 징글징글한 악습, 수시로 솟구치는 분노,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무력감과 우울감, 끝까지 남아 괴롭히는 깊은 상처,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자만심…

버리는 일, 말은 쉽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버리고 또 버리고, 나 자신조차 버리고, 버렸다는 생각조차 버린 어느 날, 그토록 염원했던 잔잔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리라 확신합니다. 그때 우리는 보다 기꺼이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그토록 염원했던 주님의 현존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으리라 희망합니다.

②제 십자가를 지고. 오늘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가 어떤 것들인가? 생각해봅니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지니게 되는 노화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참 큰 십자가입니다. 내가 점점 작아지고 약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하는 현실 또한 만만치 않은 십자가입니다. 매일 백번 천번도 더 탈출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고달픈 삶의 현실 역시 큰 십자가입니다. 매일 마주해야만 하는 나와 철저하게도 다른 그는 십자가 중의 왕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들을 외면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 십자가들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보다는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그 십자가들을 짊어지라 하십니다. 주어진 십자가들을 좀 더 호의적으로 바라보라 하십니다. 꼭 끌어안고 가라 하십니다. 그런 노력을 통해 십자가는 점차 괴로움의 대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성장과 구원을 위해 보내주신 선물 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③나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매일 새롭게 떠난다는 것입니다. 공생활 기간 내내 예수님께서는 한 고을에 오래 머무시지 않고 지속적으로 옮겨 다니셨습니다. 지리적, 공간적인 이동도 이동이지만, 영적인 이동 역시 거듭되었습니다. 나에게서 아버지에게로, 삶에서 죽음으로, 그리고 또다시 삶으로. 높음에서 낮음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그리 길지도 않은 이 한 세상, 어찌 그리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인지 모릅니다. 다들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자면 대하소설 10권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돌아보면 후회스런 순간들, 되돌이키고 싶지 않은 비참했던 순간들, 죽고 싶었던 순간들도 많았습니다.우리 인간 존재 자체가 근본적으로 부족하고 나약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 깊은 상처, 쥐구멍으로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부끄러움, 큼지막한 지우개로 싹싹 지우고 싶은 흑역사들에 연연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매일 되살아나는 아픈 기억들, 부단히 주님 자비의 손길에 맡겨야겠습니다. 아침이면 아침마다 어제의 나를 딛고 기쁘게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