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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떤 고난과 역경도 그 속에서 내딛는 미약한 한 걸음보다 강할 수 없습니다!

2월 17일[연중 제6주간 목요일]

여러분들 이 세상 살아가면서 그 누군가로부터 ‘사탄’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누군가가 아무리 큰 실수를 했고, 또 아무리 밉다 할지라도 적어도 이런 표현까지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수제자 베드로 사도에게 정말 충격적이고 원색적인 표현 ‘사탄’이라는 말까지 써가면서 그의 그릇된 생각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강경한 어조로 베드로 사도를 질타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이어지는 예수님의 발언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일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 사도는 아직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구원은 십자가를 통해서 온다는 진리, 진정한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 온다는 진리를 그토록 강조하셨건만, 베드로 사도는 그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가끔 제 안에 들어있는 사탄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때로 하느님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머릿속은 오직 인간적인 것들뿐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고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기보다 인간들로부터의 인정을 더 추구합니다. 진지하고 영적인 사고방식보다는 오로지 세상적 잣대로만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마음속엔 오직 현세적 성공, 사람들의 박수갈채, 축척, 상승의 욕구로 가득 차 있어 보다 본질적인 것들, 영원을 향한 갈망, 하느님을 향한 발돋움, 희생, 배려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풀잎 위에 맺혀있는 아침 이슬같이 해가 뜨면 즉시 사라지고 마는 허상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베드로 사도가,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안타까웠던 예수님이었기에, 사탄이라는 강경한 표현까지 사용하며 회심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오래전 ‘그래도 계속 가라’(Keep Going)는 멋진 제목의 책을 봤습니다.

“인생에 있어 기쁨의 순간은 찰나이다. 때로 기쁨이 오랜 장마 간간이 먹구름 사이를 뚫고 잠깐 내비치는 햇살처럼 미약하기만 하고, 대부분 슬픔과 고통의 연속인 것처럼 보이는 우리네 인생이지만, 그래도 계속 가라!”

베드로 사도는 ‘그래도 계속 가라’를 충실히 실천했습니다. 사실 베드로 사도가 보여준 모습, 예수님 보시기에 참으로 실망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오랜 시간, 귀에 못이 박히게 강조해왔지만, 오늘 보시다시피 베드로 사도는 전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해대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힘과 권력을 바탕으로 살상과 정복을 일삼는 세상의 왕이 아니라 비폭력의 하느님, 고통의 메시아, 산 제물로 바쳐질 어린 양임을 그토록 강조해왔건만, 베드로 사도는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고 허황된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 사도를 향한 예수님의 질책을 매섭기만 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수제자 베드로의 위신이 공개적으로 찌그러지는 순간입니다. 속까지 환히 들여다보시며 정곡을 찌르는 예수님이 오늘따라 엄청 밉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참혹할 정도로 부끄럽습니다. 자존심이 구겨진 베드로 사도의 머릿속은 ‘이런 말까지 들어가며 계속 가야 하나?’하는 의구심으로 가득 찼겠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의 태도를 보십시오. 그래도 계속 갑니다. 여기에 베드로 사도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삶이 우리를 위해 준비한 것은 행복과 기쁨만이 아닙니다. 때로 온 우주가 우리에게 호의적인 것 같은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풀잎 끝에 잠시 맺혀있는 아침이슬과도 같습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도 그 속에서 내딛는 미약한 한 걸음보다 강할 수 없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