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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저는 암에 걸린 후 새로운 사목을 시작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2월 16일[연중 제6주간 수요일]

요셉 버나딘 추기경님(1928~1996)의 용서와 화해, 치유 스토리는 언제 들어도 큰 감동을 선사합니다. 그가 시카고 대교구 교구장으로 봉사하던 1993년 신앙 특강 차 뉴욕에 머물렀는데, 거기서 동료인 오코너 추기경을 만납니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오코너 추기경은 당시 떠돌던 소문 하나를 그에게 전합니다. 조만간 미국 내 한 추기경이 성추문으로 고소당할 것이라는 소문이었습니다.

다음날 조간신문을 집어 든 그의 요셉 버나딘 추기경님의 두 손은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일면에 대서특필된 보도 내용은, 그 용의자가 바로 추기경 자신임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단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었던 그였지만, 그런 추문에 자신이 휘말렸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당혹스럽고 수치스러웠습니다.

TV며 신문들은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연일 요셉 버나딘 추기경님에 대한 공격과 성토를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 안에서 갑작스레 자신에게 다가온 십자가를 묵묵히 받아들였고, 그 꿋꿋이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요셉 버나딘 추기경님은 자신을 곤경에 빠트린 스티븐이라는 고소인조차도 돌봄이 필요한 길잃은 한 마리 양으로 여기고, 맞고소를 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인내심과 통제력을 잃지 않고 기도 안에서 인내롭게 무고함을 풀어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 스티븐 역시 추기경 음해를 위해 이용당한 희생자였음이 밝혀졌고, 스티븐은 자진해서 고소를 취하했습니다.

모든 상황이 종결되고 나서 요셉 버나딘 추기경님은 스티븐을 찾아갔습니다. 진심으로 그를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당시 에이즈로 인한 절망 속에 살아가던 스티븐은 교회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는데, 추기경님이 온몸으로 보여준 화해의 몸짓에 깊이 감동을 받게 됩니다.

스티븐은 추기경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던 순간 자신의 영혼 안에 진정한 치유가 이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요셉 버나딘 추기경님은 헨리 나웬과의 만남 때 당시 상황을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지금 나와 스티븐은 심각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스티븐은 에이즈에, 나는 췌장암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우리 둘 다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스티븐은 한달에 한번 꼴로 전화를 해서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있습니다. 그의 전화 한 통은 제가 너무나 큰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제 서로가 서로를 지원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스티븐의 병세가 깊어지자 요셉 버나딘 추기경님은 다시 한번 그를 찾아가 병자성사를 집전했습니다. 1995년 9월 22일, 추기경님의 서거 1년 전 스티븐은 추기경님으로 인해 교회와 화해할 수 있었음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지는 요셉 버나딘 추기경님의 말씀은 더욱 감동적입니다. “지금은 제게 대단한 은총의 시간입니다. 저는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갈 때 옆문으로 곧바로 진료실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암에 걸려 죽음을 겁내는 환자들을 찾아보고 싶고, 그들 곁에서 위로를 주는 형제이자 벗이 되고 싶습니다. 암에 걸린 후 새로운 사목을 시작한 셈입니다. 그 점에 대해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병세가 깊어지자 요셉 버나딘 추기경님은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로욜라 중앙병원에 입원합니다. 그는 자신이 환자이기 이전에 사제라는 마음으로, 목숨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병실 이곳 저곳을 다니며 동료 암환자들의 영혼을 돌봤습니다.

1996년 11월 1일에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애 마지막 3년간의 회고록 ‘평화의 선물’ 집필을 끝냈고, 11월 14일 69세의 일기로 선종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참석했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절친했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친필 카드를 작성했고,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발송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가 직접 쓴 카드는 선종 직후 우체국으로 옮겨져 전 세계로 발송되었는데, 그 가운데 수신자 김수환 추기경님의 이름도 끼어있었습니다.

천국에서 온 성탄 편지

사랑하는 벗이여,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번 성탄은 제게 특별한 성탄입니다. 왜냐하면, 아마도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성탄일 테니까요. 이런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쁨도 있습니다. 다가올 세상, 곧 천국에서 주님과 보다 깊이 친밀하게 하나 되는 희망을 미리 맛보는 기쁨이 있습니다. 제가 이제 하늘 고향을 향하여 저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게 될 때, 제 마음은 사랑하는 벗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간 제게 베풀어 주신 우정과 친절, 협조와 기도에 깊이 드립니다.

요셉 버나딘 추기경님의 용서와 화해, 그로 인한 치유와 관련된 영웅적인 모습은 이 시대 사목자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진정 예수님을 꼭 빼닮은 사목자요 치유자였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