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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얼마나 큰 것인지?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2월 6일 [연중 제5주일]

오늘 둘째 독서인 코린토 1서는 바오로 사도의 성공적인 회심, 개과천선과 인생 역전의 비결을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회심 이후 그가 평생토록 잃지 않았던 초심과 항구한 겸손의 덕이었습니다.

회심 이후 바오로 사도는 틈만 나면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 미성숙과 흑역사를 아무런 가감없이 드러냈습니다. 그는 한두 번도 아니고 틈만 나면 만천하에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켰습니다.

이유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큰 은총과 자비를 잊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근본, 자신의 약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코린토 교회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솔직한 겸손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코린토 1서 15장 9절)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마냥 한때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배신에만 파묻혀 있지 않았습니다.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억눌려있지만은 않았습니다. 부끄러웠던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생각하며 훌훌 털어버리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런 바오로 사도의 마음가짐이 또한 서한에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겸손의 덕입니까? 그런 바오로 사도의 겸손의 덕은 그를 더욱 둘도 없는 주님의 제자요 탁월한 이방인의 사도로 거듭나게 만들었습니다.

생각으로는 쉽지만 삶 속에서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덕이 겸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겸손의 덕은 언제나 하느님과의 관계를 기초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겸손의 덕을 지니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얼마나 큰 것인지?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를 알아야됩니다. 그다음 단계로 그에 비해 나란 존재는 얼마나 작고 미소한 존재인지를 파악해야겠습니다.

절대자이신 하느님 앞에 나는 지극히 상대적인 존재이며, 필연적이신 하느님 앞에 나는 우연적인 존재입니다. 무한하신 하느님 앞에 나는 유한한 존재이며, 무죄하신 그분 앞에 나는 죄투성이인 존재입니다.

이 모든 상황들을 종합해보니 결국 우리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 최선의 태도는 겸손뿐입니다. 아무런 자격도 없으면서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무상으로 초대받은 우리는, 크신 그분의 은총에 그저 감지덕지하면서 맨 끝자리라 할지라도 감사하면서 앉아야겠습니다.

주제넘게 자신을 끝도 없이 올려놓고, 하느님께 속하는 것을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겸손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이며, 무상으로 주시는 하느님 은총의 선물을 받기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겸손의 덕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덕이니, 지상에서 부터 겸손의 덕을 갖추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겸손의 덕은 특별한 사람들만 갖춰야 하는 덕이 아니라 세상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