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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모두는 필요한 상황에서 우리 동료 인간에게 경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2월 4일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예수님 시대 유다 사회의 제반 상황을 소상하게 기록한 탁월한 역사가가 있었으니, 플라비우스 요세푸스(38~100)입니다. 그는 유다인들의 역사, 특히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시기 유다 역사를 구체적으로 전해주고 있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그는 제1차 유다 항쟁(66~70)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갈릴래아 지역 사령관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전세가 불리해지자 로마 군대에 투항해서 역사에 길이 남을 매국노가 됩니다.

그 후 요세푸스는 로마 황제들의 보호 아래 ‘유다 전쟁사’ ‘유다 고대사’들의 중요한 역사적 문헌을 남기게 되는데, 그의 저작들은 신약성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의 죽음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헤로데 2세인 헤로데 안티파스는 합법적인 아내(페트라의 임금 아레타스의 딸)와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동생 헤로데 필리포스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남편과 헤어지게 한 후,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수모를 안겨준 것입니다.

금쪽같은 딸을 소박놓은 헤로데 안티파스의 만행 앞에 크게 분노한 페트라의 임금 아레타스는 안티파스의 군대와 전면전을 벌입니다. 그 전쟁에서 헤로데의 군대는 거의 전멸하게 되는데, 요세푸스는 안티파스가 세례자 요한을 죽인 죗값을 치른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성격은 서슬이 시퍼런 쌍날칼 같은 것이었습니다. 강직하고 직선적이었습니다. 불의와 거짓을 죽어도 못 견뎌 했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불같이 일어섰고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고 하고 싶은 말을 따박따박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큼 세례자 요한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 투명하고 청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광야에서 초근목피의 생활을 계속했었기에, 여타 권세가들이나 인기인들이 일으키는 스캔들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재물에는 일말의 관심이 없었기에, 아무리 털어봐야 먼지 밖에 나올게 없었습니다.

솔직히 뒤가 구린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쓴 소리를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었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상대가 로마 총독이든 헤로데든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아니다 싶을 때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할 말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세례자 요한의 레이더에 헤로데 안티파스의 몹쓸 짓이 포착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임금이라는 사람이 모범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혼인에 대한 거룩한 계명을 폐기하고 모욕하는 모습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사자에게도 여러 번 경고했지만, 효과가 없자, 광장 한 복판으로 나가 크게 외쳤습니다.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불의와 위선 앞에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즉시 목소리를 높이고, 깃발을 높이 들었던 세례자 요한의 당당함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오늘 이 시대 예언직을 수행해야 하는 우리 모든 성직자 수도자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모습입니다.

돌아보면 사제로서, 천주교 신자로서 참으로 자랑스러웠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국가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 암울했던 군부 독재 시절, 다들 두려워 숨죽이고 있던 시절, 우리 신부님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부양가족이 없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오늘따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님의 말씀이 제 가슴을 크게 칩니다.

“우리 모두는 필요한 상황에서 우리 동료 인간에게 경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선한 판단을 받을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동료 인간들이 그릇된 길을 걸어갈 때 꾸짖어야만 합니다. 그 일로 내가 죽음을 맞게 될지라도 형제를 꾸짖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면 안 됩니다.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나는 그 사람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라고 냉정하게 대답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오직 마귀하고만 아무 상관이 없을 뿐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