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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무리 큰 죄라 할지라도 주님 자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2월 3일[연중 제4주간 목요일]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마무리하는 다윗왕의 마지막 순간의 모습이 슬프면서도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의 일생은 대하소설 10권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흥미진진했으며 부침과 요동을 거듭했습니다.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제압하던 미소년 시절, 주군 사울 왕의 총애를 받던 시절, 반대로 그의 시기와 질투로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넘기던 시절, 마침내 기름 부음을 받고 왕으로 착좌하던 시절, 견고한 왕권을 확립하며 승승장구하던 시절, 그러나 한순간의 유혹을 못 이겨내고 죄를 범한 후, 충신 우리야를 사지로 보내는 중죄를 저지르던 시절…그의 생애는 참으로 드라마틱했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묵상하다 보면 ‘인간 별것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때 하늘을 찌르던 권세를 누렸을뿐더러, 백성으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한 몸에 받던 그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우리와 비슷한 인간, 나약한 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다윗왕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성왕으로 칭송받습니다. 다윗이란 세례명을 지니고 있는 신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성인(聖人) 가운데서도 특별한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은 참으로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성품은 온화했고 성실했으며, 권위를 인정할 줄 알고 자신의 할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신앙심은 어린 시절부터 출중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님의 성궤를 다윗성에 안치하는 일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전투 속에, 펄럭이는 야전 막사 휘장 가운데 모신 주님의 궤가 마음에 걸리자 그는 주님을 위한 성전을 지어 드리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더욱이 다윗은 은혜를 저버리는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라,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할 줄 아는 가슴 따뜻한 남자였습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자신을 살려준 친구 요나단의 우정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이자 왕자처럼 살게 해 주었습니다.

이런 다윗이었지만 그 역시 평생 씻을 수 없는 두 가지 과오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가 저지른 죄의 심각성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간음죄와 살인교사죄입니다. 요즘 같으면 아무리 정상 참작을 해준다 해도 징역 20년 감이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둘 중 한 가지 죄만 저질러도 사형에 처하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토록 신앙심 깊고 충실하던 다윗이 되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데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그는 늘 승승장구했습니다. 나가는 전쟁마다 승전보를 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강이 해이해진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다윗은 심란한 전쟁터로 나가지 않고, 후방에서 호사스런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너무 높이 올라갔습니다. 백성들의 환호하고 군사들은 충성심을 보이자 잔뜩 기고만장해졌습니다. 주님 두려운 줄 몰랐습니다. 휘하 부하들은 피비린내 나는 전선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는 술과 고기, 향락에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주님께서 이런 다윗을 그냥 두실 리 만무합니다.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십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그를 내려보내신 것입니다.

다윗 인생의 부침은 오늘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아무리 높이 올라갔다 할지라도, 오늘 우리가 아무리 강한 믿음 안에 경건하게 살아가고 있다 할지라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 한방이라고 잠시 자만하는 순간, 순식간에 죄의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더욱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주님의 크신 자비는 우리 인간의 죄를 훨씬 능가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라 할지라도 주님 자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는 다윗이 보여준 ‘솔직하고도 즉각적인 회개’입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2 사무엘 12장 13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고만장했던 다윗,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심연의 바닥까지 내려갔던 다윗, 주님 자비와 인간의 비참 속에서 오랜 방황을 거듭하던 다윗이 마침내 임종 직전에 도달했는데, 그가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인생의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남아있는 모든 힘을 다해 남긴 유언은 오늘 우리를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너는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크게 복잡 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하느님 안에 머무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인도하시는 길을 걸으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정해주신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