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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수도자 충만한 삶은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는 명백한 표지입니다!

2월 2일[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

 

설날 아침 미사를 끝내고 바깥으로 나오니… 세상에! 한 폭의 풍경화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사가 그렇듯이 기쁨과 환희의 순간은 찰나입니다. 잠깐의 눈요기가 끝나고 길고 긴 수고의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떡국 한 그릇 후루룩 초스피드로 흡입하고 나서는 곧바로 전투 복장을 하고 제설작업에 투입되었습니다. 세상 좋아져서 강력한 송풍기를 등에 메고 하루 온 종일 이곳저곳 눈을 치우고 또 치웠습니다.

새해 첫날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길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올 한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저 순백의 눈처럼 다들 깨끗하고 순수해졌으면, 구리지 않고 솔직담백해졌으면, 잔머리 굴리지 않고 좋으면 좋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고, 싫으면 싫다고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오늘 축성 생활의 날입니다. 한국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의 말씀대로 수도자들은 하느님이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존재입니다. 동시에 하느님의 소유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인 만큼 잘 존재(Well-Being)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살아계시며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가 바로 축성생활자들의 존재입니다. 따라서 축성생활자들은 모든 일에 앞서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잘 존재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이자 축성 생활의 날을 맞아 스스로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수도생활, 과연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 우리의 수도생활에 대해 나는/세상 사람들은/주님께서는 정녕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수도자들의 현존에 대해 정녕 가치와 의미를 찾고 있는가? 수도자들은 존재 자체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고 있는가?

혹시라도 우리 수도자들의 삶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반대 증거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라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 사는 모습을 보고 ‘저게 뭐야? 수도자가 저래도 되는거야?’라며 충격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4~50년전, 한해 입회자가 4~50명씩 되던, 그래서 침실이 부족하던 수도 성소의 호황기 시절을 그리워며,‘라떼는 말이야!’만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끼리만 알콩달콩, 오손도손, 재미있고 편안하게 살면서, 수도원 담 너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잘 짜여진 일과표에 따라 수도 규칙에 대한 철저한 준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고통받고 있는 세상과 가난한 이웃을 향한 개방과 환대, 나눔과 헌신은 조금도 안중에 없는 것은 아닌지?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것은 아닌지?

참으로 큰 도전 앞에 서 있는 축성 생활이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수도 생활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찾고 회복시키기 위한 진지한 숙고와 성찰은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수도자들 한분 한분의 내면에 성령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열정과 활기가 넘치는 수도 공동체 생활이 회복되면 좋겠습니다. 수도자들의 얼굴에서 기쁨과 매력이 철철 흘러넘쳤으면 좋겠습니다.

고통받는 세상 속 가난한 이웃들을 향한 수도자들의 적극적인 봉사와 헌신도 아주 중요합니다. 각 수도회 고유의 카리스마적 현존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만한 삶입니다.

어쩌면 한 수도자의 삶은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는 명백한 표지입니다. 수도자 한분의 현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한 가운데 살아 숨쉬고 계신다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