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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번뿐인 우리네 인생,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너무 전투적으로 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월 1일 [설]

저희 피정 센터에 멋진 야외 식당을 개장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피정객들이 몰려오셔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명절을 이곳에서 지내시는 분들이 계셔서 열심히 요리를 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밥이 최고더군요. 가마솥 찰진 밥으로 밥을 얹히고, 부랴부랴 제 특기인 자연인표 김치찜에다가, 모듬 조개탕에다가 맛갈진 마약 김치에다가, 순식간에 10인분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화목 난롯가에서, 밖에는 펄펄 함박눈이 내리는데, 다들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드셔주시니 제 마음이 얼마나 뿌듯하고 훈훈해졌는지 모릅니다.

또 다시 맞이한 설 명절입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가족·친지들과 함께 지내면서, 내가 윗사람이니, 니가 아랫사람이니 따지지 말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앞다투어 따뜻하고 맛갈진 밥 한 끼 차려주면 좋겠습니다.

괜히 14후퇴 때 서운했던 이야기 꺼내서, 또다시 상처를 주고받지 말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것 먹어봐라, 저것 먹어봐라, 잘 먹어야 힘이 나지, 하면서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는 이번 명절이면 좋겠습니다.

오늘 두번째 독서인 야고보 서간은 우리 인간 존재의 실체요 본질을 단 한 문장으로 아주 정확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보서 4장 14절)

특별히 설날 아침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추모하는 분들, 제삿상 건너 편에 앉아계신 분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분들, 나라며 가문, 공동체나 가정 전체를 쥐락펴락, 좌지우지 하셨던 분들…

그 권세, 그 위세가 백 년, 천 년 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30년, 50년 지나가니, 그 모든 분들, 마치도 한 줄기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우리네 눈 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우리 역시 불과 30년, 50년 후면 어쩔 수 없이 그분들 뒤를 따라나서겠지요.

생각할수록 참으로 아름다운 명문장입니다.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어찌보면 야고보 서간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강력한 경고장입니다.

이 세상 일에만 목숨 거는 사람들, 영혼이나 상위 가치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들, 순식간에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지위나 명예, 권력이나 재산을 전부로 여기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장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인간 세상 안에서, 인간에 의해, 계획되고 진행되는 모든 일들은 다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확실하십니다. 세상 모든 확실성은 오직 하느님께만 기인합니다.

뭐 엄청나고 대단한 것 같지만 우리네 인생 참으로 덧없습니다. ‘한 줄기 연기!’ 참으로 적절하고 적합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한번 뿐인 우리네 인생,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아야겠습니다. 너무 전투적으로도 살지도 말아야겠습니다. 너무 팍팍하게 살아서도 않되겠습니다.

찰라같은 이 세상, 섬광처럼 지나가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해만 뜨면 사라지는 새벽안개 같은 우리네 삶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시계로 보면 너무나 짧아 아쉬운, 수학여행 같은 우리네 지상 여정입니다. 최대한 기쁘고 신나게, 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흥미진진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마주한 가족들, 친지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겠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이 세상 소풍의 둘도 없는 동반자들입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 배려하고 서로 도와주라고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소중한 인연들입니다.

오랜만에 가족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설 명절은 서로를 향한 더 많은 배려와 지지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내 목소리는 좀 많이 줄이고, 상대방의 말을 더 많이 경청해야겠습니다. 공동체가 좀 더 살아나기 위해, 내가 좀 더 작아지고 겸손해지며, 좀 더 부드러워지고 온유해져야겠습니다.

우리 가정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서로를 위해 그런 노력을 지속할 때, 주님께서도 우리 가정을 기쁜 마음으로 축복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기 6장 24~26절)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