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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한 주님 현존 의식 속에 살아갈 때 언제나 우리는 강건합니다!

1월 29일[연중 제3주간 토요일]

돌아보니 저는 크고 작은 배들을 참 많이 탔습니다. 업무상 초대형 유조선에도 참 많이 오르내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도로 사정이 열악해 장거리 이동을 위해 연안여객선도 많이 탔습니다. 최근에는 생업을 위한 작은 낚싯배까지…

언젠가 기상악화로 배가 끊겨 한 며칠 작은 섬에 묶여 발을 동동 구르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어선을 빌려 타고 통영항으로 나올 때의 기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넘실거리는 큰 파도 앞에 제가 탄 작은 배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한 번씩 집채만한 파도가 밀려올 때는 심장이 멎는 듯했습니다. 가까스로 항구에 도착했지만 배에서 내리기가 여의치 않았습니다. 가까스로 육지에 내린 저희 일행 모두의 얼굴에는 사색이 완연했습니다. 저는 그때 바다 무서운 줄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갈릴래아 호수를 항해하다가 거센 돌풍을 만난 제자들이 느낀 두려움을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엄청나게 높은 파도 앞에 느낀 공포심이 얼마나 컸던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향해 이구동성으로 크게 부르짖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코 복음 4장 38절)

배의 앞부분을 이물 혹은 선수(船首)이라고 하고, 뒷부분은 고물 혹은 선미(船尾)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은 다들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 배의 뒷쪽에 누으셔서, 배개까지 베고 주무시고 계신 것입니다. 천하태평 예수님의 탁월한 유머감각이 다시 한번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그 상황에서도 그토록 느굿하고 여유로운 예수님의 모습을 본 제자들은 해도해도 너무하다 싶은 생각에 그분을 흔들어 깨우며 볼맨 목소리로 외친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제자들이 보여준 태도는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삼라만상의 주인이자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있는데도 제자들은 목숨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미성숙과 불신앙, 몰이해와 두려움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느릿느릿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십니다. 호수를 향해 외치십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갈 길이 먼 제자들, 당신을 향한 믿음도 부족하고, 이해의 폭도 넓지 않은 제자들을 향해 크게 나무라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폭풍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능력이 그분 안에 현존하고 계심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삶 속에서 폭풍우가 다가올 때 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흔들리는 우리 배 안 어딘가에 주님께서 현존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때로 아니 계시는 듯 하지만, 반드시 우리들의 여정에 함께 동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점 한 가지!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고통이나 시련 여부에 상관없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늘 존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앞에 일상적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와 이해하지 못할 현실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풍파와 시련이 거듭된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강한 주님 현존 의식 속에 살아갈 때 언제나 우리는 강건합니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으며 희망할 수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