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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놀랍게도 하느님의 말씀이 제 안으로 들어오시고, 살아 움직이며 숨을 쉬십니다!

1월 23일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오늘 세상 모든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지냅니다.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특별히 말씀 주일을 제정하시면서, 전 세계 모든 신앙 공동체와 개별 그리스도인 각자가 하느님의 말씀과 더욱 친밀하게 지내고, 말씀 안에서 살아가고, 말씀이 생활 안에서 활짝 열매 맺기를 희망하시면서 이날을 살아가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저 같은 경우 종신서원 때, 매일 선포되는 말씀을 중심에 두고, 말씀 안에 살아가자고 굳게 다짐을 하고 부족하지만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이른바 ‘성독’(聖讀) 혹은 ‘거룩한 독서’를 삼 십여 년 동안 꾸준히 해온 것입니다.

성독은 오랜 교회 전통에 따른 탁월한 기도 방법인데, 말 마디 그대로 성경을 읽고, 곱씹고, 그 달콤한 맛을 깊이 음미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아침 미사 후 30분, 그리고 묵주기도를 끝낸 밤시간에 30분, 하루에 1시간을 거의 빼먹지 않고 실천해왔습니다.

물론 쉽지가 않았습니다. 근무 강도 높았던 날, 몸이 파김치처럼 늘어질 때는 ‘이렇게 힘든 날, 성독은 무슨 성독?’ 하면서 잠자리로 직행하고 싶은 유혹도 많았습니다.

저녁식사 후, 다른 형제들은 휴게실로 직행해서 흥미진진한 프로야구에 몰입할 때도, 눈물을 머금고 성경을 펴들 때는 억울한 마음도 컸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드린 약속이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분이 좋을 때나 기분이 꿀꿀할 때나, 하루도 빼먹지 않고 성독을 계속 하다보니, 거기서 오는 은총과 축복이 상당합니다.

때로 깊은 렉시오 디비나 중에 하느님의 말씀이 성경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말씀이 성경 밖으로 걸어 나와서 제 비천한 몸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세파에 지친 제 영혼을 세상 따뜻하게 위로해주십니다. 저를 살게 하시고 변화시키십니다.

이제 제게 있어 성독은 둘째 가면 서러워할 취미요 특기가 되었습니다. 기도에 있어서 지속성, 일상성, 항구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실감합니다.

당일 성경 말씀을 주제로 성독을 하는 것도 괜찮지만, 다른 성경 말씀들을 순서대로 일관성 있게, 꾸준히 이어가며 성독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성독을 통한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냥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는 것입니다.

딸랑 성경 본문만 읽는 것이 아니라, 교부들의 해설이나 참고서와 더불어 읽는 것입니다.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마음으로, 영혼으로 읽는 것입니다.

렉시오 디비나 하면 즉시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베트남 교회의 가경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구엔 반 투안 추기경님입니다. 1975년 공산화 이후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는 그 어떤 절차도, 이렇다할 설명도 없이 순식간에 교도소 독방에 수감되었으며, 기약없는 수감 생활과 가택 연금 생활이 13년간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수감 즉시 독방 생활의 스케줄을 짰습니다. 매일 새벽, 한 조각의 빵과 한방울의 포도주를 두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거룩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기억나는 성경구절을 독방 바닥에 써놓고, 세상 가장 행복한 얼굴로 성독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행한 성독의 결실은 작은 담배갑 종이에 깨알같은 글씨로 적으셨는데, 퇴근하는 간수에게 전해졌고, 매일의 묵상 나눔은 베트남 교회 신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 성독의 결실들은 후에 ‘희망의 길’ ‘희망의 기도’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고, 수많은 언어로 번역출간되었습니다. 희망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상태에서도 그는 희망하고 또 희망했습니다. 칙칙한 교도소 독방을 자신의 존재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의 빛으로 가득채웠습니다. 비결은 바로 매일 매 순간 계속된 성독이었습니다.

거듭되는 혹독한 심문과 협박, 그리고 짙은 고독의 힘겨운 수감 생활이었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제가 갇혀 있는 감옥 근처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가끔씩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는 또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성독이 주는 은총의 결과였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