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칼럼

곤경에 처한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 안식일 규정을 지키는 일보다 훨씬 소중합니다!

1월 19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 복음 선포 여행을 떠난 예수님과 제자단의 행보는 지극히 소박하고 가난했습니다. 많은 짐을 실은 낙타 부대며, 여러 명의 노예며, 큼지막한 가마를 갖춘 럭셔리한 여행단이 아니었습니다.

손에 든 것이라고는 고작 뱀이나 전갈 방어용 지팡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짐보따리도 없었습니다. 갈아입을 여벌 옷이나 비상식량도 없었습니다. 우르르 무리지어 다니면서 누군가가 숙소를 제공해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습니다. 한끼 식사라도 제공해주면 감지덕지하면서 게걸스럽게 먹었습니다.

발길 닿는 고을마다 환대한 것이 아니었기에, 때로 몇 끼니나 쫄쫄 굶으며 건너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밀밭 사이를 걸어가던 제자들이었기에, 자동으로 손이 밀 이삭으로 갔었겠지요. 지독한 허기를 조금이라도 면하려고 밀 이삭을 손으로 비벼서 입에 털어넣었습니다.

그 모습을 목격한 바리사이들은 이게 웬떡이냐며 즉시 예수님께 태클을 걸어왔습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마르코 복음 2장 24절)

여기서 눈 여겨봐야 할 한 가지 포인트! 안식일에 대한 바리사이들의 과도한 해석입니다. 이스라엘 전통 안에 이런 예외가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밀이삭을 자르는 것이 허용되었던 것입니다.

“너희가 이웃의 포도밭에 들어갈 경우, 원하는 만큼 배불리 포도를 먹을 수는 있지만 그릇에 담하서는 안 된다. 너희가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경우, 손으로 이삭을 자를 수는 있지만 이웃의 곡식에 낫을 대서는 안 된다.”(신명기 23장 25~26절)

바리사이들은 특별히 안식일 규정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과도하게 해석했고, 무리하게 적용시켜 가난한 백성들을 억눌렀습니다. 그들은 밀 이삭 몇 가닥 자르는 것도 추수의 한 형태로 봤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을 어기고 훼손시키는 노동 행위 29가지를 나열했고, 29가지는 각각 또 다른 가지를 쳐서 세밀하게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백성들 입장에서 그 얼마나 답답하고 고약한 안식일 규정이었겠습니까?

만일 부주의로 누군가가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면 1차 경고를 받고 벌로 속죄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1차 경고를 받은 사람이 또 다시 목격자가 있는 앞에서 안식을 규정을 어기게 되면, 그 벌로 돌로 쳐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토록 비인간적으로 가혹한 안식일 규정의 폐단을 똑똑히 당신 눈으로 보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이 그토록 중요시 여겼던 안식일 규정을 보란듯이 산산조각 내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안식일을 선포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코 복음 2장 27~28절)

곤경에 처한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 안식일 규정을 지키는 일보다 훨씬 소중합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율법 조항 하나 하나에 얽매이신 작은 분이 아니라 자비로 충만한 크신 하느님이십니다.

안식일 규정을 비롯한 제반 율법을 해석할 때는 자구 하나 하나에 연연할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율법을 바라봐야 합니다. 한 인간 존재가 처하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을 고려하며 율법을 적용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율법의 주인은, 안식일 제정의 원천은 바로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