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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님 부재시 우리 인간의 현실은 얼마나 허망하며 절망적인지?

1월 5일[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사도단 일행이 갈릴래아 호수를 가로질러 가려다가 역풍을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맞바람이 얼마나 강했던지, 파도가 얼마나 거세던지,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해도 배는 항상 그 자리였습니다.

기진맥진 탈진해져 제정신이 아닌 제자들 앞으로 예수님께서 유유히 물위를 걸어오셨습니다. 그 모습에 혼비백산한 제자들은 스승이요 주님, 구원자요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향해 ‘유령’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 상황을 예수님 입장에서 생각해봤습니다. ‘정말이지 웃기는 짬뽕들이로구나. 해도 해도 너무한 녀석들이다. 스승인 나를 보고 유령이라니. 쯧쯧! 아직도 갈 길이 멀었구나.’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제자들의 모습이 엄청 웃겼을 것입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제자들을 진정시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물위를 걸어오시는 스승님을 보고 사색이 되어 유령이라고 외쳤던 사도들, 그러나 막상 확인해보니 스승님이셨습니다.

갑자기 불어 닥친 역풍과 높은 파도 앞에 좌충우돌하면서 희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사도단의 결핍되고 불완전한 모습과 자연현상마저 좌지우지하시는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한 하느님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습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의 특별한 이 에피소드는 주님 부재시 인간의 현실은 얼마나 어둡고 나약한지, 얼마나 허망하며 절망적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할 때 인간은 또 얼마나 밝고 화사해지는지? 또 얼마나 영원하며 희망적인지를 알게 합니다.

주님 없이 인간끼리 뭔가 하려고 할 때는 언제나 혼돈과 무질서, 절규와 아우성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가 탄 배 위로 승선하실 때 즉시 다가오는 것이 잔잔한 평화와 치유, 충만한 구원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만 바라볼 때 강건해집니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으며 희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이 아래로만 향할 때, 세상만 바라볼 때, 나 자신만 바라볼 때, 즉시 두려움 투성이의 나약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여객선 상층부 갑판 위로 올라가보면 흔들릴때 마다 꼭 붙들라고 안전장치인 난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배가 기우뚱할때면 만사제쳐놓고 난간을 꼭 붙드는 것이 상책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라는 배 안에도 흔들릴때 마다 꼭 붙들 수 있는 영원한 안전 장치가 있습니다. 든든한 선장이기도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 교회 공동체 안에 항상 현존하시는 관계로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크게 요동칠 때에도 너무 불안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가장 밑바닥에서 중심을 잡고 계시는 복원력의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겠습니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여기저기 교회 안에 설치되어 있는 안전장치를 꼭 붙들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