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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긴 마리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종신서원을 준비하는 형제들의 피정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오전에는 강의와 묵상, 오후에는 작업과 운동, 오래전 수련장 역할을 하던 시절이 떠올라 참 좋습니다.

작업 시간에는 다들 톱 하나를 손에 들고 십자가의 길 주변에 서 있는 나무들을 살리러 나갑니다. 너무 오랜 세월 돌보아주지 않았기에, 여기저기 다들, 안쪽부터 시작해서 말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무들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한 그루 한 그루 손질해줄 때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라고 말하며 죽은 나뭇가지들을 시원시원하게 쳐주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나무들이 제게 ‘그간 너무 답답했는데, 너무 고맙다.’며 인사를 하는 듯합니다.

이미 말라 죽어버렸는데, 쓸데없는 가지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으니 나무들이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생각하니 정말 미안했습니다. 말라비틀어진 가지들을 잘라내며 든 생각 한 가지!

또다시 새해가 다가왔는데, 나도 시원시원하게 잘라낼 죽은 가지들을 잘라내야 할텐데…새 해에는 떨쳐버릴 것은 속 시원하게 떨쳐버리고 좀 더 자유롭고 홀가분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수도회 피정집에 머물 때의 일이었습니다. 사실 피정객들에게 있어 식사만큼 중요한 것도 없는데, 주방 자매님을 못 구했더군요. 형제들이 밥해대느라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저보고 발이 넓으니, 좋은 주방 자매님 한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떤 분을 원하냐고 물었더니, 요구 사항들이 지나치게 구체적이었습니다.

연령은 4~50대에다 음식 솜씨는 기본. 교회 기관이니 신앙심이 돈독하고, 봉사 정신도 갖춘 분. 급여에 너무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는 분. 성격이 밝고, 마음씨도 따뜻한 분. 제일 중요한 것 한 가지, 입이 무거운 분! 다 듣고 난 저는 크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사님들! 그런 자매님 있으면 저부터 모셔가겠네요. 아무리 눈 크게 뜨고 온 세상을 다녀봐도 그런 자매님은 없답니다. 특히 입이 무거운 자매님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습니다. 참 딱 한분 있기는 하네요. 우리 성모님!”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복음 2장 19절)

오늘 우리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지만 절대로 우쭐한 법이 없었습니다. 구세주 탄생이란 하느님의 큰 사업에 가장 큰 협조자로서 뭔가 기대할 만도 한데 결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한평생 자신 앞에 벌어진 모든 일에 대해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습니다.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진의(眞意)를 찾아나갔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마리아는 참으로 겸손하셨습니다.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초지일관 겸손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쓰시겠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몸, 자신의 인생 전체를 다 내어드렸습니다. 자신의 한 몸 희생하여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에 조그만 기여라도 한다면 참으로 영광이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토록 겸손했던 마리아였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녀의 머리 위에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왕관을 씌워주십니다. 끝없이 밑으로 내려서는 마리아를 하느님께서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리십니다. 그 자리가 바로 ‘천주의 성모’ ‘하느님의 어머니’였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 학자의 가르침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마리아만이 유일무이한 하느님의 어머니요 또한 그분의 신부(新婦)이십니다. 마리아는 열 달 동안 구세주 하느님을 자신의 태중에 모셨던 살아있는 감실이십니다. 마리아께서는 아기 예수님을 당신 태중에 잉태하시기 전 당신 영혼 안에 먼저 잉태하셨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