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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록 우리는 곤궁하고 빈약하지만 주님의 충만함으로 인해 우리는 거룩해지며 완전해집니다.

12월 31일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세월은 이토록 속절없이, 그리고 덧없이 흐르고 흘러, 또다시 우리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튼실하고 뿌듯한 결실이 아니라 하찮고 초라한 수확 앞에 큰 구멍이라도 숭숭 뚫린 듯 가슴이 시린 연말입니다.

역사상 유래없이 혹독하고 참담한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면서, 다들 너나 할 것 없이 온몸으로 느끼는 바가 하나 있습니다. 강력한 대재앙 앞에서 우리 인간이란 존재 참으로 나약하고 부실한 존재라는 것. 때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제한적이라는 것.

이토록 암담한 시기, 길고도 지루한 대재앙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절실한 노력이 있습니다. 매일 하느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것. 부단히 그분의 크신 자비를 청하는 것. 하루하루를 기꺼이 견뎌내는 것.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우리의 얼굴을 통해, 그분의 현존을 드러내는 것.

성무일도를 바치다가 길고 긴 시련의 터널을 지나는 오늘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이 되는 성경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온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여러분의 심령과 영혼과 육체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완전하고 흠 없게 지켜주시기 빕니다.”(데살로니카 1서 5장 23절)

하늘의 성인성녀들께서,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그리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큰 환난 속에 살아가는 오늘 우리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계심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어려움이 클수록 우리의 심령과 영혼과 육체를 완전하게 흠없이 지켜나가도록 백방으로 노력해야겠습니다.

시편 작가의 한 말씀은 또 제 마음을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 젊은 시절의 허물과 죄악을 다시는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시편 24)

지난 한 해 천천히 되돌아보니 온통 잿빛입니다. 속 빈 강정 같아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말로는 만리장성이라도 쌓는 듯했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한 것 없어 너무나 초라하고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꼼꼼히 돌아보니 주님의 은총으로 충만했던 한해였습니다. 죽을 것만 같았는데, 보십시오. 그럭저럭 살아지는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불안불안하지만 견뎌내다 보면 그럭저럭 그렇게 또 세월이 흘러갑니다. 이 혹독한 시절도 시간과 더불어 흘러갈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곤궁하고 빈약하지만 주님의 충만함으로 인해 우리는 거룩해지며 완전해집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당신의 큰 자비와 은총으로 채워주시는 주님의 큰 사랑에 깊이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이 한해와 작별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