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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말 못하는 그 아기들을 자신의 합당한 증거자로 만드셨습니다!

12월 28일[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폭력이나 편법으로 권력을 차지한 부당한 권력자들, 그도 아니면 통치자로서의 자격 여건을 전혀 갖추지 못해, 그 자리에 앉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 보이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치고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자리에 대한 일상적 불안감, 위기감입니다.

헤로데가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안에 큰 수치요 오점으로 남은 군사정권 시절의 독재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헤로데의 경우 아기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해 안 그래도 부실하고 불안불안한 자신의 왕권이 크게 흔들림을 느낍니다.

그 결과 인간의 탈을 쓴 자로서 결코 하지 말아야 할 악행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 결과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잔혹한 악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헤로데는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만 것입니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죽임을 당한 아기들의 운명이 참으로 가련합니다. 가문의 미래요 희망이던 아기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던 부모들의 마음을 예레미야 예언자가 미리 예언했습니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오 복음 2장 18절)

유다인들도 과거 우리나라 백성들처럼 남아선호사상이 유별났습니다. 그런 금쪽같은 아기들, 가문의 대를 잇고, 가계를 이어야 할 아기들, 보물 같고 목숨 같던 아기들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잃었으니 고을 전체가 깊은 슬픔에 잠겨버리고 말았습니다.

거룩하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 그 이면에 무수한 아기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지극한 선인 앞에는 그에 맞서는 반드시 극악무도한 악인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악한 인간 존재의 강한 시기 질투심과 극단적 이기주의로 인한 피해자가 속출합니다.

참으로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무죄한 아기들의 죽음이지만 성 쿠옷불트데우스 주교는 이렇게 아기들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어린 것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리스도를 위해 죽어갔고 그들의 부모들은 죽어가는 순교자들을 보고 애통해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말 못하는 그 아기들을 자신의 합당한 증거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아직 말을 못하면서도 그리스도를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사지를 움직여 투쟁할 힘이 없는 아기에 불과했지만 벌써 승리의 월계관을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정권욕과 사리사욕에 눈이 먼 지도자들,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정신 나간 지도자들, 인간미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야수 같은 지도자들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 없이 죽어간 아기 순교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또 다른 무엇인가를 원하시리라 믿습니다.

개념 없는 지도자, 정신 나간 리더들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움직이는 것, 불의 앞에 침묵하지 않는 것,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는 것, 참 정의, 참 진리의 길을 따라 움직이는 신앙인이 되는 것을 원하시지 않을까요?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