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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끊임없는 상호 인내와 지지, 계속되는 용서와 격려, 그 결과가 성가정(聖家庭)입니다!

12월 26일[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청소년들과 동고동락하는 살레시오 회원들인지라, 식탁에서의 아재 개그가 끊이지 않습니다. 식사 시간 내내 경쟁이라도 하듯이, 앞다투어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를 쏟아냅니다. 그중에 어떤 형제는 이미 골백번도 더 들은 에피소드를 마치 처음 이야기하듯이, 반복 재생해서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골백번도 더 들은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한 신부님이 세상을 떠나 천국문 앞, 베드로 사도의 검문소에 줄을 섰더랍니다. 신부님께서 긴장된 표정으로 순서를 기다리는데, 앞에 선 사람들과 베드로 사도가 나누는 대화가 들려오더랍니다.

“지상에서 큰 과오나 오점 없이 잘 지내다 오셨습니까?” “많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한번 열심히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많이 미워하는 사람 있습니까?” “음~ 솔직히 정말 용서 안 되는 사람 서너 명 있지만, 이제 뭐 요르단강까지 건너왔는데, 어쩌겠습니까? 다 용서해야죠.” “네! 좋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결혼은 하셨습니까?” “당연히 결혼해서 50년간 같이 살았죠.” “네 그렇군요. 그럼 뭐, 여기 천국행 티켓 받으시고, 저쪽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런데 특별한 일 한 가지! 계속되는 심사에서 베드로 사도는 꼭 결혼 여부를 묻고 결혼했다고 하면, 두말 않으시고, 천국행 티켓을 발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신부님 차례가 되었는데,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베드로 사도님, 심사하시면서 꼭 결혼 여부를 물으시고, 결혼했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에게는 두말 않으시고 천국행 티켓을 발부하시던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지체없이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에끼, 이 사람아, 한번 생각해보게. 결혼을 통해 지상에서 이미 충분히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을, 어떻게 또다시 지옥에 보낼 수 있겠는가?” ㅋㅋㅋ

참으로 뼈 때리는 농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시피 결혼은 사랑에 밥 말아 먹는 일이 절대 아닙니다. 결혼의 기쁨, 결혼의 설레임, 결혼의 유통기한을 그리 길지 않습니다.

나와 달라도 철저히 다른 그를 1년, 2년, 3년도 아니고, 30년, 40년, 50년을 견뎌내고 참아낸다는 것, 정말이지 순교자적 인내와 신앙심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가정이 있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입니다. 구세주 하느님을 모시고 살았던 성가정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전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습니다. 아들 예수님으로 인한 고통이나 상처가 왜 없었겠습니까?

성모님과 요셉은 예수님으로 인해 이해하지 못할 상처가 생길 때마다 그 모든 일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복음 2장 51절)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셨다는 것은 앙심을 품는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너 그렇게 행동한다 이거지? 한번 두고 봐! 언젠가 꼭 되갚아주고 말거야’가 아니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하셨다는 말은 일단 인간적인 모든 판단을 보류하겠다는 말입니다. 내 뜻을 접고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겠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지금은 비록 잘 알지 못하겠지만, 계속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 나가겠다는 말입니다.

성가정의 구성원 각자 각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진 노력했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서로 양보하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인내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나갔습니다.

상대방으로 인해 미칠 것만 같을 때, 상대방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순간에도, 상대방 안에 활동하시는 성령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그렇게 각자의 신앙 여정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오늘 이 성가정 축일에 이 한 가지만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원만한 가정, 원만한 공동체는 절대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끊임없는 상호 인내와 지지, 계속되는 용서와 격려, 그 결과 이루어지는 가정이 성가정이요 친교의 공동체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