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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단순함, 소박함, 천진난만함, 순수함, 하느님 부르심에 즉각 일어설 수 있는 준비된 마음!

12월 20일

 

오랜만에 예쁜 어린이들이 피정 센터를 찾아왔습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 신앙 교육을 참 잘 시켰던가 봅니다. 아침•저녁 기도, 미사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얼마나 고맙고 대견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 마다 드는 느낌입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투박하지만 맑은 샘물처럼 순수합니다. 마치 스펀지 같습니다. 사랑을 주면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사랑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줄도 압니다. 복잡하거나 계산적이지도 않습니다.

순수한 아이들 모습을 바라보면서 순수 그 자체였던 나자렛 시골 처녀 마리아를 기억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티 없이 맑은 눈망울을 지녔던 마리아, 사심 없는 마음의 소유자였던 마리아, 질그릇같이 소박한 마리아를 인류구원 사업의 첫 번째 협조자로 선택하십니다.

마리아의 언행 하나하나를 따라가 보십시오. 얼마나 단순한지 모릅니다. 조금도 계산적이지 않습니다. 전혀 세상에 물들지 않습니다. 천사의 알림 앞에, 크나큰 하느님 초대 앞에 조금의 자만심도, 우쭐거림도 없습니다. 솔직하고 겸손하게 그저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를 표현합니다.

“보잘 것 없는 제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가브리엘 천사의 설명을 듣고 난 마리아는 더욱 겸손한 자세로 그 초대를 수락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당대 잘 나가던 예루살렘 귀족 가문의 딸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시골 처녀 마리아를 당신 구원 사업의 협조자로 선택하셨음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느님께서 선호하시는 삶의 유형은 마리아가 지녔던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자세는 마리아가 지녔던 바로 그것입니다. 단순함, 소박함, 천진난만함, 순수함, 하느님을 향한 열린 마음, 하느님 부르심에 즉각 일어설 수 있는 준비된 마음….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간 쌓아두었던 서류들이며, 편지들, 잡지들,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다가 마음에 꼭 드는 시 한 편을 발견했습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ㆍㆍㆍㆍ)/이름 몰랐을 때 보이지도 않던 쑥부쟁이 꽃이/발길 옮길 때마다 눈 속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다./이름을 알면 보이고 이름을 부르다 보면 사랑하느니/사랑하는 눈길 감추지 않고 바라보면/꽃잎 꼭꼭 숨어 피어 있어도 너를 찾아가지 못하랴./사랑하면 보인다. 숨어 있어도 보인다.”(정일근, 쑥부쟁이 사랑)

시인께서는 ‘사랑하면 보인다’고 강조하셨는데,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을 의미할까요? 그 사랑은 자기중심적 사랑이 아니라 이타적 사랑, 하느님 중심적 사랑이겠지요. 흐리고 탁한 시선이 아니라 해맑은 시선, 꼬이고 꼬인 부정적 눈초리가 아니라 따뜻하고 낙관적 눈망울을 지닌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사랑말입니다.

청정한 시선, 공감과 경청, 연민으로 가득 찬 시선…. 그런 눈으로 세상만사를 바라볼 때 우리도 마리아처럼 하느님 거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