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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공동체 역시 구구절절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삶으로, 세상 앞에 서야겠습니다!

12월 14일[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제 학자 기념일]

저희가 운영하는 주말 힐링 피정에 참석하셨던 한 수녀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박삼일간 저희와 함께 숙식하시며 피정하신 수녀님께서는 시골 영감 수도자들이 외딴 바닷가에서 알콩달콩, 아옹다옹, 깔깔깔깔, 재미있게 살아가는 모습에 느낀 바가 많으셨나 봅니다. 식탁에서 하시는 말씀, “우리 공동체 식사 시간도 이렇게 재미있었으면…”

깜짝 놀란 저는 수녀님께 여쭈었습니다. “아니, 왜요? 수녀님? 수녀님네는 식사 시간이 어쩐데요? 많이 썰렁한가요?” “썰렁한 걸 넘어서 완전 시베리아예요. 소화가 잘 안 될 지경이예요.”

저는 농담 겸 위로 겸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수녀님, 너무 우울해하지 마세요. 사실 저희도 별반 다를 바 없어요. 도진개진이예요. 수녀님들 떠나시면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모두 염원하는 충만하고 역동적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적 삶이 어떤 것인지 묵상해봅니다. 무엇보다도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편안한 공동체, 그래서 구성원 모두 소화가 잘 되고 건강한 공동체, 상호 간의 용서와 친교, 희생과 나눔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 다른 무엇에 앞서 주님께서 주인공이시며, 그분의 말씀과 뜻을 경청하는 공동체, 그래서 공동체 존재 자체로 세상의 등불이요 희망이요, 치유의 원동력인 공동체…

오늘 복음에 소개되고 있는 예수님의 공동체가 딱 그랬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루카 복음 7장 21절)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제자 두 명을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하게 합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그들의 물음 앞에 예수님께서는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공동체적 삶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요한의 두 제자는 역동적 치유의 현장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목격합니다. 질병과 병고와 악령의 시달림으로 인해 오랜 세월 고통당하던 이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해방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고, 이를 통해 그분의 메시아성을 명료하게 인식합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 역시 구구절절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삶으로, 구체적 사랑의 실천으로 세상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날의 특별한 질병, 사랑의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친교와 일치로 충만한 우리의 공동체적 삶을 보고, 즉각적으로 치유되는, 그런 우리 공동체를 건설해나가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