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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뼈를 깎는 자기 성찰과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합니다!

12월 13일[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특강과 판공성사 시즌을 맞아, 한동안 바쁜 순간을 지내다가, 이제야 겨우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팬데믹 시대 점점 위축되어가는 신앙생활 앞에 힘겨워하시는 교우들의 눈망울을 보며 큰 안타까움과 함께 작은 도움이라도 되어드려야겠다는 마음에 열심히 뛰어 다녔습니다.

고백소에 들어갈 때마다 크게 느끼는 바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저나 교우들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잘 안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 고백성사의 내용과 올해 내용이 거의 똑같다는 것입니다. 늘 같은 죄, 같은 고민을 평생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회 입회 때 안고 있었던 고민을 아직도 안고 있습니다. 거의 매번 고백하는 죄의 내용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영적지도 신부님께도 부끄럽습니다. 똑같은 죄를 반복하니…

그러면서 드는 한 가지 생각입니다. 신앙에도 성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성장은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은 절대 주어지지 않습니다. 각고의 노력, 그야말로 뼈를 깎는 자기 성찰과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아주 조금씩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과수원을 운영하는 농부는 어떤 노력을 합니까? 이른 봄에 묘목들만 딱 꽂아놓으면 다 되는 일이 아닙니다. 심고 나서는 즉시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넉넉한 퇴비도 필수입니다. 강풍에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도 세워줘야 합니다. 때로 병충해 예방약에 성장촉진제도 투여합니다.

그래야 묘목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몇 년 뒤에는 꿈에 그리던 품질좋은 과일을 풍성히 수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멋진 묘목을 본 농부의 마음은 얼마나 흐뭇하겠습니까?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에도 반드시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 각자 각자에게 주어지는 아주 중차대한 의무가 있는데, 각자 안에 뿌려진 신앙의 씨앗을 성장시키는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세례받은 후 40년, 50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조금도 성장하지 못하고 세례 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들을 만납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고 얼마나 딱하게 여기실까, 걱정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그분의 성전 가장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연륜을 따지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신앙은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메시아로 자신들의 목전까지 다가오신 예수님을 몰라봤습니다. 몰라본 것까지는 좋은데, 철저하게도 메시아를 거부하고 배척했으며, 결국 십자가에 못 박는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매일 구체적인 삶 속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명품 신앙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너무나도 당연히 우리의 신앙이 성장해야 마땅합니다. 신앙의 성장을 위한 매일의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아있는 대림 시기 많이도말고 딱 두 가지, 자신의 신앙을 성장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영적 계획을 한번 세워보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