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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선은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건네는 가장 고귀한 하느님 손길입니다!

12월 12일 [대림 제2주일]

언젠가 회의차 지방에 내려갔다가 밤늦은 시각에 집 가까이 있는 국철 역에 도착했습니다. 역 광장으로 내려오니 참으로 흐뭇한 광경이 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역 주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노숙인들을 위해 인근 한 교회 신자들의 무료급식 봉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당시 저희 수도회에서도 노숙 청소년들을 위해 뭔가 해야 되지 않겠냐는 논의가 있어 저는 한참 동안 바짝 다가가서 돌아가는 상황을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봉사자들의 일사불란함이었습니다.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배식봉사를 하시는 분들, 뒷정리를 하시는 분들, 질서를 잡는 분들…. 아마도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 기도 끝에 얻어진 결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봉사자들이 환한 얼굴과 기쁜 마음으로 봉사에 전념하고 있어 보기가 좋았습니다.

줄은 모두 세 줄이었습니다. 첫번째 줄에서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쇠고기국밥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저도 ‘한그릇 받아먹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냄새가 그럴 듯했습니다. 국밥을 받아든 분들 얼굴이 일순간 환해졌습니다. 그분들에게 그 순간은 아마도 천국을 맛보는 순간이겠지요.

그리고 두번째 줄에서는 긴 밤을 꼬박 지새워야 하는 노숙인 형제들의 새벽녘 출출함을 달래주기 위해 먹음직스럽고 커다란 빵을 하나씩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번째 줄에서는 후식으로 커피를 원하는 분들에게 일일이 커피를 타드리고 있었습니다. 노상이었지만, 소박하고 정성이 담긴 풀코스 서비스를 받은 분들 모습이 행복해보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20분 이상 배식하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저를 흘끔흘끔 바라보시던 봉사자 아주머니께서 참다 못해 제게 한 소리 크게 외쳤습니다. “아저씨, 백날 거기 서 있어 봐야 소용없어요. 아저씨도 저 뒤로 가서 줄 서세요.”

아주머니의 한 마디에 제가 받은 충격이 컸지만, 당시 역 앞에서 저는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밤늦은 시간 잠깐이었지만 역전에서 있었던 그 소박한 행사(무료급식)는 진정 감동깊은 축제 한마당이었습니다. 소박하지만 정성을 다해 준비한 따뜻한 음식들이 세파에 지친 이웃들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사랑과 나눔의 축제, 다름 아닌 미사였습니다.

오늘은 자선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고통당하던 백성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지니셨던 측은지심을 오늘 우리가 다시 한번 지녀야 할 주일입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 한끼 제공하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바로 복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행위이자 구원을 직접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무료급식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단기처방에 불과하다, 노숙인들을 더 양산시키는 일이다, 그들에게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들 나름대로 가난의 악순환을 벗어나 보려고 얼마나 발버둥쳐온 분들인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분들은 공정한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냉혹한 우리 사회의 피해자이자 희생자들일지 모릅니다. 점점 쌀쌀해져가는 날씨에 노숙인들을 위한 더욱 근본적 해결책이 강구되길 기원합니다. 수많은 노숙인들, 또 후보 노숙인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우리 손을 통해서 작동되길 바랍니다.

자선행위, 몸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시작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단 한번 시작하면 그 ‘맛’이 대단합니다. 내 호주머니에서 뭔가 빠져나간다는 느낌은 잠시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느새 빠져나간 그 이상의 것을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에게 갚아주십니다. 자선은 우리에게 뿌듯한 마음, 넉넉한 가슴을 축복의 선물로 베풀어주십니다.

자선은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건네는 가장 고귀한 하느님 손길입니다. 자선은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도구입니다. 자선을 통해서 우리는 무거운 등짐 하나를 내려놓은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자선과 더불어 우리는 오랜 상처와 아픈 기억들이 조금씩 치유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누려고 해도 나눌 거리가 있어야 나누지?’ 라는 분들, 조금만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건네는 작은 미소 한번 역시 큰 자선입니다. 실의에 빠져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힘내라’는 표시로 어깨 한번 두드려줄 때, 우리는 큰 자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