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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도, 그분 앞에 항복하고, 그분 앞에 내 모든 계획과 의지, 삶 전체를 내려놓는 것!

11월 25일 [연중 제35주간 목요일]

제 삶 속에 기도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우선권이 어느 정도일까? 성찰해보며,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첫 번째 자리에 있어야 할 기도가 일이나 취미활동, 티비나 SNS에 밀려 한참 뒷쪽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틈만 나면 기도가 신앙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외치고 있고, 머리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하루일과 중에 일과 기도 사이의 균형을 자주 놓치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부족하고 나태한 기도 앞에 스스로를 합리화시킵니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일하는 게 기도가 아닐까? 한량처럼 빈둥거리면서 기도에만 충실한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존경하는 헨리 나웬 신부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 명쾌히 정리해주시니 참으로 감사드릴 일입니다.

“악령은 우리를 정신없게 만들어, 자투리 시간이 조금만 보여도 온갖 할 일과 만날 사람과 처리할 업무와 만들어야 할 제품으로 쉴 틈을 주지 않으려 합니다. 악령은 우리에게 진정한 슬픔과 애통해할 여지조차 허용하지 않으려 기를 씁니다. 삶이 바쁘기 때문에 내면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바쁜 삶은 오히려 저주가 됩니다. 악령의 음성은 또한 우리를 유혹하여 무적(無敵)의 얼굴을 취하게 하려 합니다. ‘연약하다, 내려놓다, 엎드리다, 울다, 애통하다, 슬프다.’ 따위의 말은 악령의 사전에 없습니다.

기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기도가 아닐까요? 크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내가 얼마나 작고 나약한 존재인지를 파악하는 것.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그분 손바닥 안에 있음을 인식하는 것. 그래서 결국 그분 앞에 항복하고, 그분 앞에 내 모든 계획과 의지, 삶 전체를 내려놓는 것, 그분 앞에 겸손되이 엎드려 눈물 흘리는 것.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구약의 인물이 한 분 계십니다. 신비로운 인물 다니엘 예언자입니다. 유달리 신심 깊고 총명했던 그는 바빌론 유배지에서도 승승장구합니다. 바빌론 왕들의 총애를 받아 셋째 가는 통치자가 됩니다.

다리우스 왕 같은 경우 총독 제도를 도입합니다. 총독 120명을 임명해 각 지역에 주재하게 하고, 총독들을 지휘할 세 명의 재상을 임명하는데, 다니엘은 세 명의 재상 중에 한 명이었으니, 그에게 주어진 권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임금의 각별한 총애를 받는 다니엘을 다른 재상들이 그냥 둘리 만무했습니다. 즉시 계략을 짰습니다. 임금을 압박해서 법령 하나를 만들어 서명하게 했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임금 말고 다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를 올리는 자는 누구든지 사자 굴에 던져질 것이다.”

임금이 반강제적으로 문서에 서명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으로 돌아간 다니엘은 늘 그랬듯이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기도였습니다. 그의 집 옥상 방 창문은 예루살렘 쪽으로 나 있었습니다. 그는 습관처럼 하루에 세 번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기도하고 있는 다니엘의 집을 급습해서 현장을 목격했으며, 곧바로 왕에게 달려가 그가 법령을 어겼다고 고발했습니다. 다니엘을 총애했던 왕은 눈물을 머금고 그를 사자 굴 속으로 넣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막아버리셨습니다. 멀쩡한 몸으로 사자 굴을 빠져나온 다니엘을 부둥켜안은 임금은, 이방인이면서도 참으로 멋진 신앙고백과 찬미가를 불렀습니다.

“그분은 살아 계신 하느님,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나라는 불멸의 나라, 그분의 통치는 끝까지 이어진다. 그분은 구해 내시고 구원하시는 분, 하늘과 땅에서 표징과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 다니엘을 사자들의 손에서 구해 내셨다.”(다니엘 예언서 6장 27~28절)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