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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느님께서 바로 ‘나’ 때문에 우신다는 것, 얼마나 감사롭고 은혜로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11월 18일[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온전히 유화강생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한편으로는 하느님이시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철저하게도 인간 조건을 지니신 채, 우리처럼 한 인간으로 살아가셨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나와 똑같은 얼굴을 지니셨다는 것,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느끼는 삶의 희로애락을 똑같이 느끼셨다는 것, 하느님께서도 마치 저처럼 야심한 밤, 출출함에 못 이겨, 피곤에 지친 얼굴로 라면을 끓이셨다는 것…

아마 예수님께서도 우리처럼 한 상 잘 차려진 잔칫상 앞에서 눈이 휘둥그래지고 얼굴도 환해지셨을 것입니다. 맛있게 음식을 드셨고 포도주잔도 기울이시고, 옆 사람과 잔을 마주치며 건배도 하셨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자기 뱃속만 가득 채우느라 정신이 없던 지도자들을 향해서는 부르르 분노에 떠셨을 것입니다. 절친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얼마나 슬펐던지 큰 소리를 내며 울기도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 우십니다. 참혹한 십자가 죽음을 불과 며칠 앞둔 어느 날, 결코 올라가고 싶지 않은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십니다. 당신의 죽음이 슬프거나 두려워서가 아니라, 끝끝내 회개하지 않고 죽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당신의 가련한 백성들이 불쌍해서 우십니다. 머지않아 철저하게도 파괴되고 유린될 당신의 성전의 모습을 미리 내다보시며 슬퍼서 우십니다.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루카 복음 19장 43~44절)

아마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울고 계실 것입니다. 끝끝내 당신을 멀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실 것입니다. 아무리 외쳐도 귀를 막고 멸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양떼를 보시고 우십니다. 지상의 평화와 일치를 간절히 원하시는 당신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전쟁과 파괴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고 우십니다.

우리의 죄, 우리의 결핍, 우리의 방황, 우리의 죽음을 결코 견딜 수 없었던 주님께서 오늘은 우리 때문에 우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왕의 왕, 삼라만상의 창조주, 하느님께서 가련한 한 인간, 바로 ‘나’ 때문에 우신다는 것, 얼마나 감사롭고 은혜로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