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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형제들이여, 용기를 냅시다. 이 정도의 여행을 힘겨운 고난으로 여기지 맙시다!

10월 15일[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성인의 순교 장면은 정말이지 감동적이고 드라마틱합니다. 평소 순교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불타오르던 성인이었기에 언제든지 순교할 마음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다른 교우들에게도 자상하게 순교 교육을 시키며 그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마지막인 듯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마침내 올 것이 왔습니다. 한밤중에 포졸들이 들이닥친 것입니다. 결박을 당하면서도, 심한 구타 가운데서도 성인께서는 태연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잘 오셨습니다. 이 먼 곳까지 오시느라 얼마나 수고들이 많으셨습니까? 저희는 오래 전부터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조금 쉬십시오. 곧 식사를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았으니, 요기를 하고 가시지요. 그동안 저희는 떠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성인께서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한 다음, 신자들을 독려했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다 함께 기쁜 얼굴로 질서정연하게 순교의 길을 떠납시다.”

해 뜰 무렵 성인은 포졸들을 깨워 정성껏 준비한 아침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남루한 옷을 입은 포졸들에게는 잘 다려진 새 옷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최경환 성인과 40여명이나 되는 마을 사람들은 마치 잔치 집에 가는 듯이, 단체 소풍이라도 가는 듯이 그렇게 순교의 길을 떠났습니다.

관헌으로 끌려가는 동안 사람들은 무든 구경거리라도 난 듯이 신작로로 몰려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이비 교도들’ ‘천주학쟁이’라고 욕하며 돌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징그러운 동물이라도 바라보듯이 우리 순교자들을 바라봤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일 앞장서 걷던 최경환 성인께서는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신자들을 격려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용기를 냅시다. 이 정도의 여행을 힘겨운 고난으로 여기지 맙시다. 주님의 천사가 황금으로 만든 자를 가지고 우리의 모든 발걸음을 재고 계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장을 서서 십자가를 지시고 갈바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생각합시다.”

마침내 최경환 성인께서는 태형 340대, 곤장 110대, 치도곤 50대를 맞고 옥중 순교합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휘광이의 칼날에 순교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다음은 그가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예수께 내 목숨을 바치고 도끼날에 목을 잘리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옥중에서 죽는 것을 천주께서 원하시니 천주의 성의가 이루어지이다.”

끔찍한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단 한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고 의연한 순교자들의 모습은 초세기 교회부터 명맥을 유지하며 내려오는 하나의 전통입니다.

위대한 순교자들께서 참혹한 죽음 앞에서도 그리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언제 어디서든, 이승과 하직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강한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의 현존과 동행에 대한 확신은 자신의 모든 것, 현재와 미래, 자신의 생사조차 자비하신 하느님의 손길에 편안히 내어맡길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제공한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