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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둔 가운데 격정을, 겸손 가운데 비범을, 고통 가운데 행복을 살았던 성인(聖人)들!

10월 15일[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제 개인적으로 성인전을 자주 읽는 편입니다. 어떤 성인전은 지나친 찬양과 과장 투성이어서 계속 읽어나가기가 부담스러운 경우도 많습니다. 또 어떤 성인의 행적은 요즘 분위기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어서 웃기기도 합니다.

알퐁소 성인이나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 같은 경우 저희와는 달리 탄식하며 식당으로 갔습니다. 식탁에 앉아서도 연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 생각에 표정이 늘 어둡고 우울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식사를 하니 소화가 제대로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시복시성되는 분들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요한 23세 교황님께서는 식사 시간에 그렇게 행복해하셨습니다. 특별한 음식이 나오면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셨습니다.

요즘 성인 반열에 오르시는 분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지극히 영적인 분들이십니다. 토마스 머튼은 ‘성화란 더욱 완전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성인들은 깊은 봉쇄의 벽 안에서 답답하고 따분한 인생을 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은둔 가운데 격정을, 겸손 가운데 비범을, 고통 가운데 행복을 살았습니다.

남루하고 보잘것없는 인간 조건 속에서도 찬란한 기쁨을, 거듭되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환희로 충만을 삶을 엮어갔습니다. 그들의 내면에는 활화산처럼 활활 타오르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아빌라의 데레사라로도 불리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1515~1582)입니다.

데레사 수녀님께서 오늘 우리 후배 수도자들과 신앙인들, 그리고 교회에 남긴 가장 큰 업적과 유산을 꼽으라 한다면, 그녀의 ‘개혁과 쇄신을 향한 열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가 살았던 중세 시대는 외적으로는 수도생활의 부흥기처럼 보였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대수도원들 안에는 당대 잘 나가던 선남선녀들이 우글우글했습니다. 당시 수도원들은 신앙뿐이 아니라, 학문이나 문화의 중심센터 역할을 톡톡해 해내고 있었습니다.

자연히 부작용도 뒤따랐습니다. 복음삼덕의 실천이나 깊이 있는 영적 생활, 형제적인 봉사와도 같은 수도생활의 본질적인 측면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생계나 출세의 방편으로 수도원 문을 두드린 사람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어려운 순간에 봉착한 교회를 위해 하느님께서 보내신 여인이 바로 아빌라의 데레사였습니다. 그녀는 개혁 과정에서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더 열렬한 기도와 관상, 침묵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메마르고 삭막한 삶 속에도 주님으로 인한 흔들리지 않는 기쁨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계속되는 박해와 탄압 앞에서도 봄꽃처럼 화사하고 빛나는 얼굴 표정을 잃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녀는 자주 이런 지향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주님, 저를 뿌루퉁한 표정의 우울한 성녀가 되지 않게 해 주세요” “항상 기다릴 줄 알게 하시고, 가장 순수한 뜻을 가지고,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데레사 수녀님께서 남겨주신 그 아름다운 덕행들을 오늘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조금이라도 실천해볼 수 있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