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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과 땀과 눈물의 순교자요, 나라와 백성을 극진히 사랑한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9월 26일[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순교자 성월을 맞아 배론 성지에 와 있습니다. 땀과 일과 눈물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생애와 영성을 깊이 묵상하며 지내는 중입니다. 신부님께서는 1821년에 태어나셨으니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교과서인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 모음집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바오로딸)를 통독하고 있는데, 편지 한편 한편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은혜로운지 모릅니다. 세 번에 걸친 통독을 다 끝내고 책을 덮은 순간 밀려오는 감정은 동종업계 종사자로서의 큰 부끄러움입니다.

부제품을 받은 최양업 토마스는 입국하는 즉시 죽음이 확실시되는 조선 땅이었는데, 목자 없이 고생하는 양떼들 생각에 거듭 목숨 걸고 임국을 시도했습니다. 이 길도 실패, 저 길도 실패 만 5년간의 노력 끝에, 5번에 시도 끝에 겨우 꿈에 그리던 조국 땅에 입국합니다.

겨우 겨우 조선 땅에 입국했을 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엄청난 대성당 앞에 수많은 교우들이 줄지어 서있었습니까? 예쁜 화동들이 꽃다발을 들고 다가왔습니까? 편안한 사제관에 짐을 풀었습니까?

절대 아니었습니다. 입국 후 최신부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번뜩이는 박해의 칼날이었습니다. 간첩이나 도둑도 아닌데, 언제나 남의 시선을 피해 밤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박해를 피해 까마득한 산속 깊은 곳에 숨어사는 교우들을 찾아봐야 했습니다.

참으로 피곤한 일이었고, 고달픈 인생이었지만, 최신부님은 박해시대 힘겹게 살아가는 교우들을 향한 사목적 열정으로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당신이 지니고 있었던 모든 에너지를 오로지 교우들의 영성생활 증진을 위해 쏟아 부었습니다.

저는 그런 최신부님 모습 묵상하며 나는 오늘 과연 무엇을 위해 내 남아있는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는가? 생각해봤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11년 6개월 동안 전국 129개 교우촌을 쉼 없이 돌며, 수많은 신자들에게 세례성사와 고해성사를 주고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그가 걸어 다닌 거리는 매년 7천리(2,800Km), 순교 전까지 9만리(35,000Km)에 이릅니다. 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54번 왕복해야 하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가 걸은 길은 평탄하고 호젓한 산책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박해를 피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간 교우들을 찾아 최양업 신부님은 언제나 오르락내리락 제대로 된 등반을 해야만 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사목생활을 끝도 없이 계속된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이처럼 길 위에서 사목생활의 전부를 보낸 땀의 순교자, 거듭되는 과로로 인한 일의 순교자, 백색 순교자가 최양업 신부님이셨습니다.

까마득한 산골짜기에 위치한 교우촌을 방문할 때 마다 최양업 신부님과 교우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지만, 헤어질 때면 ‘이제 언제 또 이분들을 만나려나?’, ‘과연 다시 살아서 만날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일과 땀과 눈물의 순교자요, 나라와 백성을 극진히 사랑한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생애와 영성은 오늘 우리 교회에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착한 목자 최양업 신부님의 탁월한 신앙과 영성이 더 널리 알려져서, 진행 중에 있는 시복시성 작업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기도문

지극한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
최양업 토마스 사제를 보내주시어
혹독한 박해로 쓰러져 가는 한국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으니
그 자애로운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사제는
굳건한 믿음과 불타는 열정으로 구만리 고달픈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방방곡곡 교우촌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을 돌보는 데
온 정성을 다 바쳤나이다.

자비로우신 주님, 간절히 청하오니
최양업 토마스 사제를 성인 반열에 들게 하시고,
저희 모두가 그의 선교 열정과 순교 정신을 본받아
이 땅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하여 몸 바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