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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언제나 환한 미소와 극진한 환대와 사심 없는 친절을 통해 매력을 회복해야겠습니다!

9월 20일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늦은 밤 귀가 시 마을을 지나칠 때 마다, 언덕 위에 위치한 저희 수도원을 한번 바라보게 됩니다. 건물 외벽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 태양광 조명등이 은은히 빛을 발합니다. 집에 다 왔다는 마음에 편안함과 안도감이 밀려옵니다.

마을에서 수도원을 올려다볼 때 마다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산 아래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과연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우리 수도회와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 위로의 언덕, 구원의 성채가 되어주고 있는가?

혹시라도 우리 공동체가 세상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 슬픔과 절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끼리만 알콩달콩, 희희낙락하면서 개념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때가 많습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내 여러 종교들이 전반적으로 심각한 퇴보 현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 천주교도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굳이 제시된 지표와 자료를 통해서 확인해보지 않더라도,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 심각합니다.

복음화율에 비해 실제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교우들의 숫자는 미미합니다. 미사를 비롯한 각종 성사 참여 빈도는 극히 저조합니다. 본당 공동체 안에 젊은 층의 신자들을 찾아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사제나 수도자들이 노령화, 청소년들과 청년들, 주일학교의 급격한 위축…전반적인 지표들이 급격한 하락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때 우리 가톨릭교회가 잘 나갈 때가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그때가 봄날이었습니다. 신자수가 급격히 증가하며, 동시에 사제나 수도자들의 수효도 증가했습니다. 밀려드는 예비자이나 수도회 지망자들을 감당하기 벅찰 정도였습니다. 종교 선호도 조사를 하면 언제나 1등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우리 교회가 사회적 약자들의 대변인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불의한 현실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정확히 할 말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중차대한 기로 앞에 섰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 교회가 잃어버린 매력을 회복할 때입니다. 매력이란 것은 절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끝도 없는 자기 성찰과 각고의 노력 끝에 조금씩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교회가 가장 부유할 때, 사실은 가장 바닥을 쳤습니다. 반대로 극단적 청빈을 살고자 노력할 때, 거지 중의 상거지 집단이 될 때, 그 바닥을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우리 교회가 제왕처럼 군림한다든지, 까마득히 높은 위치에 좌정한 관리자로 남아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언제나 환한 미소와 극진한 환대와 사심 없는 친절을 통해 매력을 회복해야겠습니다. 양떼와 세상을 향한 진심어린 헌신과 봉사로 좋았던 시절의 매력을 되찾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와 우리 공동체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천상 예루살렘의 거룩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강렬한 빛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