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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앙 고백에는 반드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생활이 뒤따라야만 합니다!

8월 31일[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때로 말씀을 선포할 때 주저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감도 없고 어색하고 난감해서 차라리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에 권위나 무게가 없을 때입니다.

심각한 죄 중에 있을 때 그렇습니다. 누군가와 깊은 갈등 속에 있을 때 그렇습니다. 제가 선포하는 말씀과 구체적인 삶 사이에 너무나 큰 괴리감이 있을 때 그렇습니다.

그런데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선포하시는 말씀 가운데는 헛된 공약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선포하시는 말씀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 앞에 사람들은 환호하고 박수를 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루카 복음 4장 31~31절)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이 권위로 가득 찬 이유는 말씀에 행동이 반드시 동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하느님 아버지의 능력을 받아 하신 말씀이었기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 앞에 마귀들조차도 굴복하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날 회당에는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권위로 가득 찬 예수님 말씀 앞에 찍소리 못하고 물러나며 그분께 대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루카 복음 4장 34절)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하늘과 땅을 뒤흔들 능력을 소유한 강력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분의 꾸지람 앞에 하늘의 기둥들이 뒤흔들리며 놀라네. 당신의 힘으로 바다를 놀라게 하시고 당신 통찰로 라합을 쳐부수셨네.”(욥기 26장 11~12절)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부정한 영의 신앙 고백을 수용하지 않으시고 거부하시고 경멸하시며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신앙 고백에는 반드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생활이 뒤따라야만 합니다.

오늘도 능력으로 가득한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내 안에 깊이 간직하며, 그 말씀을 구체적인 삶 속에서 실천하며, 그 힘으로 이 하루를 기쁘게, 기꺼이 살아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