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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수님 사명의 본질은 이 세상 전체, 인류 전부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8월 30일[연중 제22주간 월요일]

사제가 된 후 부모님이 살고 계시던 본당에 가서 처음으로 강론할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참으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두렵고 떨렸습니다. 나름 감동적인 강론을 한번 해보려고 얼마나 준비에 준비를 거듭했는지 모릅니다. A4지 한 장 정도의 짧은 강론을 며칠에 걸쳐 준비했고, 그걸 또 거울을 보고 수십 번도 더 예행연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첫 강론을 하시는데, 아마 예수님께서도 마음이 비슷하셨을 것입니다. 요즘 미사 때 마다 강론 전에는 성경 말씀이 먼저 선포되듯이, 예수님께서도 강론을 하시기 전에 한 성경 구절을 찾으셔서 읽으셨는데, 정말이지 기가 막힌 성경 구절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은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이사야서 61장 1~2절)

한 문장 한 문장, 글자 한자 한자가 다 예수님 당신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구절을 봉독하심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공생활 기간 동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명확히 밝혀주신 것입니다.

회당 안에 있던 청중들은 이제 성경 말씀이 선포되었으니, 길고도 장황한 강론이 이어지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강론은 딱 한 마디였습니다. 1초밖에 안 걸렸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복음 4장 21절)

아마 예수님께서 지금 이 순간 공생활을 하신다 해도, 절대로 강론 길게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핵심중의 핵심만, 촌철살인의 한 말씀만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단 한 마디 강론 말씀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짧지만 임팩트 있는 말씀, 권위로 가득한 간결한 강론에 놀라워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름 한편으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면서 도통 예수님을 메시아로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더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화가 잔뜩 나서 그분을 회당에서 내쫓았고, 고을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벼랑 끝까지 끌고 가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신성모독이며 반역입니까?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박수를 쳐도 부족할 터인데, 노골적인 살의로 그분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메시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지상적 번영, 물질적인 부와 정치적 권력, 이스라엘의 위대함과 관련된 공약의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물리치셨던 빵, 기적, 권세를 다시 한 번 요구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의 이기적인 바램들과 교만한 허영심을 끝도 없이 충족시켜주시는 기적의 요술방망이 같은 분이 아님을 기억해야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파견되신 가장 큰 이유는 이 세상 전체, 그리고 인류 전부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이끌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사명의 본질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