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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인간 존재 안에 영과 육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것, 그것이 하느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바입니다!

8월 22일 [연중 제21주일]

예수님께서 구세사의 전면에 혜성처럼 등장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기 시작했는데, 추종의 주된 이유는 다분히 육적·세속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니신 강력한 능력과 은총을 바탕으로 세세대대로 무너지지 않을 천년왕국을 건설하시리라 기대했습니다. 오랜 이스라엘 역사 안에 그 어떤 예언자나 판관, 왕이나 지도자도 성취하지 못한 주변 강대국들로부터의 완전한 독립과 자주, 전쟁에서의 승리, 승승장구, 탄탄대로를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을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은 그들을 큰 실망에 빠트렸습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요한복음 6장 68절) 모든 것을 걸었던 예수님께서 전혀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말씀을 하시자, 즉시 수많은 제자들이 그분을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육을 가장 중요시 여기고 영은 뒷전이었던 사람들에게, 육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영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사람들은 귀에 거슬려하며 투덜거리며 떠나간 것입니다.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예수님 말씀은 앞뒤 문맥을 잘 고려해서 잘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 존재는 육으로만 살지도 않지만, 영으로만 살지도 않습니다. 한 인간 존재 안에 영과 육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것, 그것이 하느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영과 육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셨지만, 이는 육을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심을 강조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육은 영과 밀접히 결합되어야만 가치가 있듯이, 영 역시 육과 조화를 이루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을 통해 이 세상에 나시고 존재하시고, 인류 구원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쓸모없는 육이란 영혼이 완전히 배제된 채, 오로지 육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한 인간 존재 안에 영적인 삶이란 조금도 남아있지 않고, 그저 동물적, 감각적, 말초적 삶만 남아있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나 육을 하느님께서 육화하신 말씀의 성전으로 이해하고 수용할 때, 그 육은 분명 성화(聖化)와 생명과 구원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